무분별한 플랫폼 규제.. 스타트업, 떡잎 되기도 전에 싹이 잘릴판

변희원 기자 2021. 9. 23. 03: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대 플랫폼 향한 규제의 칼끝, 작은 스타트업까지 겨눠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국회에서 ‘플랫폼 피해 단체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법률 서비스 플랫폼인 로톡, 부동산 플랫폼 직방, 가상 피팅 안경 쇼핑앱 라운즈 등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불렀다. 함께 참석한 대한변호사협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한국안경사협회 관계자들은 “중개 사업으로 수수료만 챙기고 서비스 품질은 보장하지 않는 약탈적 플랫폼 사업 모델을 막아야 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은 이 행사에서 나온 단체들의 목소리를 모아 다음 달 국정감사에서 플랫폼 기업 규제를 핵심 의제로 삼을 방침이다.

행사에 참석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로톡과 라운즈 등은 가능성은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수익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이라며 “플랫폼은 무조건 ‘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규제 잣대부터 들이대면서 혁신 창업의 싹을 자르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네이버 등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칼끝이 스타트업까지 겨냥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과 골목 상권 침해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의 규모나 성장세, 업종과 상관없이 전방위 규제에 나서면서 스타트업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몰린 것이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가 시행되면 자금력이 취약한 스타트업들은 고사하고 거대 플랫폼이 시장을 독식하는 역설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타다 금지했더니 카카오 모빌리티가 시장 장악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은 지난해 ‘타다 금지법’으로 입증됐다. 쏘카의 렌터카 기반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는 작년 회원을 170만명까지 늘리며 카카오 모빌리티 택시 호출 서비스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침해한다고 반발한 택시 업계와 갈등을 빚다가 타다 금지법 제정으로 한순간에 택시 호출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러자 카카오 모빌리티가 단숨에 택시 호출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해 버렸다. IT 업계에서는 “정치권이 택시 업계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각종 이익 단체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언제든 ‘제2의 타다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토종 숙박 플랫폼을 규제하면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해외 숙박 예약 플랫폼들로 예약이 몰리면서 이들만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픽=이철원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안에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플랫폼이 연대 책임을 지고, 맞춤 광고도 고객 동의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는 “온플법은 온라인 스타트업에 너무나 높은 진입 장벽이자 직접적인 생존의 위협”이라고 입을 모은다. 온플법의 적용 대상은 연매출 100억원 이상이거나 거래액 1000억원 이상인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다.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뿐만 아니라 오늘회(회배달 서비스)나 아이디어스(수공예 쇼핑몰), 지그재그(패션몰)처럼 이름도 낯선 스타트업 100여 곳이 규제 대상이 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성장은 하지만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스타트업에 대기업과 같은 의무를 지우면 누가 사업을 하려고 하겠느냐”면서 “손발을 다 묶어놓고 혁신을 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인수·합병(M&A)을 할 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거대 기업들의 횡포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회사를 키워서 상장을 하거나 매각하는 게 스타트업 업계의 성공 공식인데, 이런 시장 상황조차 모르는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해외는 빅테크만 골라 규제

플랫폼 규제는 해외에서도 강화되는 추세이긴 하다. 하지만 규제의 목표는 빅테크의 독과점을 막는 것이다. 미국 하원 양당이 지난 6월에 발의한 플랫폼 규제법에 명시된 규제 대상 기준에 해당하는 곳은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뿐이다. 유럽과 일본의 규제 대상 플랫폼 기업도 5~6개에 불과하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스타트업들이 플랫폼 규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트업이 커나갈 숨통은 틔워놓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스타트업이 산업 구조 개편의 대안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분위기에 편승해 아예 싹을 자르려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