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중국판 ‘대마불사’의 몰락

김홍수 논설위원 2021. 9. 23.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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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2일 상해에 위치한 중국 초대형 부동산기업 헝다그룹 본사 전경/AFP연합뉴스

추석 연휴로 국내 증시가 쉬는 동안 글로벌 증시가 출렁거렸다. 주요국 주가가 2~3%씩 급락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10% 가까이 폭락했다. 중국의 부동산 재벌 헝다(恒大)그룹의 부도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총부채 2조위안(약 365조원), 달러 채권 발행액만 266억달러(31조원)에 이르는 세계 122위 거대 기업이다. 헝다의 파산 가능성은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자아냈다.

▶헝다 창업주 쉬자인(許家印) 회장은 빈민촌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컸다. 월 14위안(2500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먹고살면서도 우한철강학원 금속공학과에 우등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제강 회사에 취업해 몇 년 만에 공장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수완이 뛰어났다. 선전시 부동산 회사로 옮겨 사장까지 지낸 뒤 39세에 독립해 헝다를 창업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헝다는 “항상(恒) 크다(大)”는 뜻이다. 마치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지향하는 듯한 작명이다.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고가 돼야 한다”는 집념을 보여왔다. 2013년 중국 축구 대표팀이 태국에 1대 4로 대패한 뒤 시진핑 주석이 ‘축구 굴기’를 부르짖자, 헝다 소유 광저우 축구팀에 세계적 감독과 선수를 영입하고 17억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축구장까지 지었다. 통 큰 투자 덕분에 광저우팀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알리바바 창업주와 중국 1위 부자를 다투던 그는 남다른 자선 활동으로 ‘홍색(紅色) 자본가’란 별명을 얻었다. 2011년부터 10년 연속 최대 기부자 타이틀을 차지하며 총 146억위안(2조6600억원)을 기부했다. 이런 이미지 덕에 그는 지난해 10월 신중국 건국 70주년 열병식에 천안문 성루에 초대받은 몇 안 되는 기업인 중 하나가 됐다.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도 초대돼 VIP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돈으로 최대한 많은 땅을 사들여 기회를 노린다”는 그의 ‘지렛대 경영술’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과도한 기업 부채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은행 대출을 죄자, 전기차·생수·테마파크 업종까지 문어발 확장을 치닫던 헝다가 자금난에 빠졌다. 사태 초기엔 중국 정부가 이 ‘홍색 자본가’를 살려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글로벌 신용 평가사들이 잇따라 ‘투기’ 등급 딱지를 붙이자, 다른 기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부도 처리할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대마불사를 믿고 마구 빚을 내 덩치를 키워온 헝다의 몰락은 1970~80년대 한국 재벌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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