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형종합병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입력 2021. 9. 2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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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몇 달을 기다려 서울에 있는 병원 외래를 예약하거나 지방에서 짐을 싸가지고 올라와 이른바 ‘빅5’에 입원을 하는 풍경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암환자 중 절반 가까이가 빅5에 와서 치료받는다고 하니 빅5 병원 쏠림 현상은 이제 익숙하기조차 하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문제는 이러한 대형병원들의 역할이 무엇인지이다. 중증·희귀 환자들을 담당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고열이 나는데, 산소 요구량이 있고, 혈당 조절이 되지 않으며, 희귀한 류마티스 질환이 기저에 있으며, 간 수치와 콩팥 수치도 올라간 환자가 있다고 하면 아마도 감염으로 인해 다발성의 장기부전이 동반되어 있을 가능성으로 복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빅5 병원이 아닌 다른 중소병원으로 전원되는 경우가 많다. 표면적인 이유는 입원실 부족, 그리고 내적인 이유는 여러 과들 중 어느 과에서도 그 과의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이다. 해당 과의 의견은 기록하나 서로 타과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다가 결국 입원 결정까지 가지 못하고 전원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까? 이런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입원 기간이 무척 길고, 치료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장기 입원 환자들은 수익이 되지 않고 병원 평가에서도 좋지 않다. 운 좋게 특정 과로 입원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 환자로 인해 많은 입원 대기 환자들이 발생한다. 굳이 수익도 되지 않으며 지표도 떨어뜨리는 이러한 환자를 입원시킬 이유가 없다.

빅5 병원의 전문성과 수많은 첨단 장비들은 경증 환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대형종합병원의 역할은 중증 환자와 문제가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빅5 병원에 수익성 좋은 환자들의 쏠림이 심화되었고 경증 환자로 인한 수익 또한 증가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제대로 된 역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형종합병원의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 쏠림 현상과 대형병원들의 수도권 분원 개설로 인한 몸집 불리기는 심히 우려스럽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이러한 분원 개설로 인한 상급종합병원 병상 확대는 굉장히 위험하다. 환자의 수도권 집중은 물론이고, 봉직의사와 간호사 같은 의료인력의 쏠림 현상 또한 심해질 것이다. 결국 지역 간 의료격차는 상상할 수 없게 커지고 지역 필수의료인력의 결핍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형병원의 특성상 이런 인력의 부족을 불법 보조인력으로 메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병원의 역할도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윤을 좇기 위한 몸집 불리기는 지역별 의료격차 심화, 나아가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대형종합병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경증 환자의 입원·외래를 제한하고, 중소병원과 같은 지표로 평가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대형종합병원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이제는 질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본연의 임무를 생각하며 이에 걸맞은 제도와 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본다.

박수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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