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여행의 기술

임의진 목사·시인 입력 2021. 9.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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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거지꼴 수행자와 제자가 길을 가는데 시장통 어귀에서 왈패들이 시비. 조롱하며 욕지거리를 해대는데 스승은 퍼허 웃기만 했어. “스승님. 저런 험한 욕을 듣고도 웃음이 나오십니까?” “얌마. 저들이 금덩어리를 내게 주었다면 냉큼 받겠지. 고작 욕이나 주는데 내가 받겠냐? 안 받기로 마음먹으니 웃음부터 나오덩만.” 여행을 하다 보면 기분 잡치는 일이 생기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쏙 흘리면 되는 문제. 하기 싫은 일을 누가 자꾸 시키면 “넵. 할게요” 크게 대답만 해 놓고 안 하면 된다. 나 참 좋은 거 가르치지? 다음 어디로 갈 건지 목적지를 정한 뒤엔 한눈팔지 말아야 해. 북한에선 병아리도 태어날 때 평양에 가고 싶어서, 삐양 삐양 하면서 운다더군. 당신은 시방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목적지를 정하는 게 일생일대 문제야.

동네 할매들은 대문 밖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곤 하는데, “내가 시방 어디 가려고 나왔지?” 기억이 안 나서야. 방에 들어가 곰곰 생각해 봐야 해. 여행의 기술 가운데 으뜸은 임기응변이지. 순간순간 판단을 잘해야 해. 한 여행자가 급해서 담벼락에 일을 보는데 순찰 돌던 경찰차가 삐요 삐요. “아니 어디다 일을 보는 거요? 당장 오줌 끊고 일로 와봐요.” “이보슈. 화재 진압 중인 모범 시민에게 왜 그러슈. 누가 담뱃불을 던져 놓고 갔길래 불을 끄는 중이라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엔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해. “고마 눈까리가 뒤지비고 자물센다아이가(기절한다). 빼가치(생선가시) 조심조심 무라. 국이 갱자이 괘안치? 건디기(건더기)도 지기재. 우얄래? 그라마 한 접시 더 시키 무까? 끼꾸도 안 찬다(간에 기별도 안 간다). 난중에는 없다. 뚱띠 아재 될라문 당 멀었다. 배 터지게 마이 묵자.” 야마리(염치)없이 며칠 묵어가고 싶은 경상도 친구의 동네. 마지막으로 여행의 대막은 잠이렷다. 잘 자야 해. 불면증엔 성경책이 명약이지. 잠 못 이루는 사람은 백이면 백 성경책을 안 읽는 사람. 장담컨대 첫 장이면 꿈나라 도착.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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