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괴상망측한 드라마

조찬제 논설위원 2021. 9. 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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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작가 존 스타인벡은 1960년 9월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미국을 일주하는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58세 때다. 75일간의 여행 막바지에 스타인벡은 뉴올리언스의 한 초등학교를 찾는다. 날마다 대서특필되던 흑인 등교 반대 시위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그해 2월 뉴올리언스 교육당국은 흑백 통합교육을 결정한다. 6년 전 연방대법원의 기념비적 판결인 흑백 간 학교 분리 배정 위헌 판결에 따른 것이다. 11월14일 6세 흑인 여자아이(미 흑인 민권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루비 브리지스)의 역사적인 등교가 시작된다. 맞불 반대 시위도 벌어진다.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백인 주부들이다. ‘응원단’으로 불리는 이들은 욕설과 야유로 유명하다. 오전 9시 정각 흑인 여자아이는 법원 집행관 4명의 호위를 받으며 검은 승용차에서 내린다. 응원단의 비난은 아이가 “겁에 질린 새끼 사슴 같은 표정으로” 학교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이어진다. 끝이 아니다. 백인 아이를 등교시키는 백인 남성을 향해서도 쏟아진다.

조찬제 논설위원

스타인벡은 여행 뒤 펴낸 <찰리와 함께한 여행>(이정우 옮김·2006·궁리)에서 이를 ‘괴상망측한 드라마’라고 했다. 그에게 현장은 극장이나 다름없었다. 군중은 관객이었다. 응원단은 연기자였다. 스타인벡의 비난은 신랄했다. “응원단은 이미 어머니가 아니었다. 여성도 아니었다. 발광한 관중 앞에서 연기하는 발광한 배우들이었다.” 군중도 권투 경기장의 피에 굶주린 관중이었고,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의 구경꾼이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 현장을 지켜본 스타인벡은 구토를 느낄 만큼 충격이 컸다. 그가 일주여행을 떠난 목적은 미국을 더 알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였지만 정작 미국을 너무 몰랐다는 그에게 이번 여행은 기억에 의존한 글쓰기에 대한 반성이었다. 일상화된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질린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는 것뿐이었다.

괴상망측한 드라마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9월 초, 한 장의 사진이 전국을 연민과 분노로 들끓게 했다. ‘무릎 꿇은 엄마’로 유명해진 서진학교 사건이다. 폐교된 학교에 발달장애우를 위한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두고 일부 주민들이 반대하자 학부모들이 주민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한 것이다. 서진학교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 개교했지만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우리 안에 있는 혐오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무릎 꿇은 학부모 못지않게 뇌리에 또렷이 새겨진 장면이 있다. 가지 말라는 학부모들의 호소에도 웃음 지으며 떠나는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다. 지역구 의원인 그는 서진학교 건립 터에 국립한방학교를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갈등을 키웠다. 염치 하나 찾을 수 없는 그의 웃음은 4년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다.

지난여름 무릎 꿇기 호소의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서진학교 개교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날>을 둘러싼 법적 다툼 때문이었다. 올해 어린이날에 상영을 시작한 영화는 암초를 만났다. 설립에 반대한 주민 A씨가 김정인 감독 측을 상대로 배급·상영 중지 및 일부 장면 삭제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것이다. A씨는 지난달 초 배급·상영 중지 가처분 신청은 취하했지만 모자이크 처리된 장면을 삭제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은 유지했다. 법원이 추석연휴 전 장면 삭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불씨는 언제든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제2의 서진학교 사태를 방불케 하는 일이 일어났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서울 송파을)은 지난 16일 “송파 실버케어센터 건립을 백지화해 주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을 해결해 기쁘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서울시가 치매 노인을 위한 치유·돌봄 시설로 추진했다고 한다.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표를 의식한 행동이라 해도 정치인이 할 언사는 아니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시대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특수학교나 실버케어센터를 혐오시설로 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집값 하락, 교육환경 악화, 조망권 침해라는 이유와 나 또는 내 가족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의 발로 때문일 터이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일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변하는데도 인식이나 처방이 과거에 갇힌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61년 전 스타인벡이 던진 질문이 여전히 가슴을 파고든다. “겁에 질린 그 조그만 아이를 품에 안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사람은 진정 없단 말인가?” 답을 고민하지 않으면 괴상망측한 드라마는 계속될 뿐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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