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38] 퇴비와 돈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초 평남 순천 비료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 미국의 ‘참수 작전’이 알려진 뒤 한동안 두문불출하다 건재함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농업 비중이 큰 북한에서 현대식 비료 공장은 인민의 복지를 상징한다. 김일성과 김정일도 비료 공장을 지을 때마다 요란한 자축 행사를 벌였다.
화학비료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개발되었다. 우리나라에도 1910년 부산과 서울에 화학비료 공장이 세워졌지만, 워낙 영세하여 비료 대부분은 일본에서 수입했다. 비료 생산에 쓰이는 암모니아가 독가스 생산 등 군사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으므로 일본이 그런 중요 시설을 조선에 짓기를 꺼렸다.
그러다가 1927년 만주 개발을 위해 흥남에 비료 공장을 세우자 거기서 나온 비료가 국내 수요의 80%를 충당했다. 남한에도 공장이 있었지만 자잘했고, 그나마 한국전쟁 때 무너졌다. 이후 식량 증산을 위한 비료 공장 건설은 국운을 건 사업이 되었다. 민간 기업들도 동참했다. 1964년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일본 차관 자금으로 울산에 한국비료공업㈜을 세웠다.
그런데 이 회사가 탈선했다. 비료 공장이 완공되기도 전에 사카린을 밀수하여 비자금부터 조성한 것이다. 국민이 분개했다. 김두한 의원은, 고약한 정경 유착 냄새가 난다면서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 도중 앞자리에 앉은 장관들에게 인분을 뿌렸다. 1966년 어제 일이다.
그 사건으로 김 의원은 구속되고 회사는 반강제로 국가에 헌납당했다. 삼성그룹은 오명을 씻기 위해 와신상담하다 1994년 그 회사를 엄청나게 높은 가격으로 되샀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비료 생산은 더 이상 수지가 맞는 사업이 아니었다. 사업 다각화를 고민하다가 결국 롯데그룹에 회사를 넘겼다.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에는 동물 뼈(인산), 식물 재(칼륨)와 함께 김두한 의원이 뿌렸던 인분(질소)을 썩혀서 퇴비를 만들었다. 퇴비와 비자금은 숨기면 숨길수록 고약한 냄새가 난다. 퇴비나 돈이나 잘 감추기보다 잘 쓰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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