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호구 안 되려면 본질을 찾자
[경향신문]
다리 긴 선수가 절대 유리한 방식
스치기만 해도 점수…재미 반감
스피드·파워 따져 점수 차등 부여
발바닥·뒤통수 센서 제거할 필요
기술적 부분 평가할 심판 육성을
“태권도가 전자호구의 ‘호구’가 됐다.”
최근 ‘전자호구 시스템,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류병관 용인대 태권도학과 교수가 한 말이다. 태권도가 불완전한 전자호구 시스템으로 ‘발 펜싱’이 됐다는 비판에 대한 개탄이다. 토론회에서는 호구 시스템 개선과 심판 육성을 통한 판정 방식 보완, 종주국으로서 자성 등 절박한 의견들이 숱하게 제기됐다.
■‘발 펜싱’ 태권도
극심한 판정시비 끝에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전자호구 시스템이 도입됐다. 몸통과 뒤통수 등에 충격감지 센서가 부착됐다. ‘차기’가 아니라 문지르기, 비비기, 갖다 대기, 좀 심하게 말하면 스치기만 해도 점수가 나온다. 결국 선수들은 ‘발을 들어 상대 공격을 견제’(커트발)하다가 틈이 생기면 몸통 호구를 발로 건드리는 식으로 플레이했다. 다리가 긴 것이 큰 장점이 됐다. 뒤통수에는 센서가 있지만 앞면에는 없다.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인교돈은 “헤드기어를 벗겨낼 정도로 강하게 뒤돌려차기를 해도 점수가 안 됐다”며 “넘어지면 무조건 감점이라 동작이 큰 기술을 섣불리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애매하고 복잡한 경기 규칙, 과도한 감점제도도 소극성을 초래하는 원인이다.
■호구,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가장 바람직한 호구는 스피드와 파워를 모두 계산해 타격 강도별로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 도중 강도를 90% 이상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지금 시스템에선 기술적으로 무리다. 일단 차선택과 아이디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경선 대한태권도협회 이사는 “발바닥 센서, 뒤통수 센서를 제거해도 기술은 다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성 카타르 국가대표팀 감독과 정우대 서울체고 감독은 “팔을 가격할 경우 커버 위를 때렸다는 이유로 점수를 주지 않는다”며 “팔 보호대를 때릴 경우, 몸통보다 약간 낮은 점수라도 준다면 더 많은 발차기가 구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영선 멕시코 국가대표팀 감독은 “커트발 점수를 낮추는 등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관된 방향성, 심판 육성 필요
호구들은 성능과 평가 기준이 약간씩 다르다. 이를 통일하려면 세계태권도연맹 등이 호구에 대해 일관된 발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전자샌드백 등을 제작하는 이진재 제미타 대표는 “발전 가능한 방향성이 먼저 정해진 뒤 거기에 맞춰 업체들이 호구를 제작하고 계속 개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판정을 모두 기계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김지숙 국기원 이사는 “기술적인 부분은 인간이 판정하는 시스템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용배 국제심판은 “판정시비로 전자호구가 도입됐다는 데 책임감을 느낀다”며 “그런데 심판 교육과 육성을 위한 투자도 미비했다”고 말했다.
■태권도 본질과 정신을 살려야
빠른 발놀림, 빠르고 강한 발 공격이 태권도 본질이다. 판정 시스템도 본질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부상을 이유로 긴 다리로 대충 갖다 대도 점수를 따는 현재 올림픽 경기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전자호구를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동시에, 소극적인 플레이를 초래하는 규정도 손봐야 한다. 논란이 있지만 온라인게임처럼 상대 에너지바를 다 손실하게 만든 선수가 이기는 규정도 적용을 검토해볼 만하다. 이진재 대표는 “누가 봐도 기량이 뛰어난 선수, 박진감 넘치게 플레이하는 선수가 이기는 쪽으로 규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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