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공동부유'에 드리운 황제의 불안

김광태 2021. 9. 2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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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공동부유(共同富裕)' 이슈가 중국을 강타했다. 말 그대로 '함께 잘 살자'라는 뜻이다. 중국의 갑작스런 공론화 소식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내로라하는 상장사들이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는 '공동부유' 아젠다를 실적 보고서에 경쟁하듯 담아내고 있다. 그 부산스러움이 문화혁명과 비견될 정도다.

개혁개방 이후 일부 지역과 일부 사람들을 먼저 부자로 만들자는 덩샤오핑의 '선부론'이 수술대에 올랐다. 40여 년 만이다. 이제 국력이 미국과 맞짱 뜰 만큼 커졌으니 한숨 돌리고 내부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궁금해진다. 이는 중국의 강력한 자신감의 표현일까, 위기에 다다른 불안감의 표현일까.

21세기의 '시황제' 시 주석은 지난달 중앙재경위원회의 10차 회의에서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로서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민이 중심이 되는 발전 사상을 견지해 높은 질적 발전 중 공동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 해 전부터 찔끔찔끔 거론돼던 '공동부유' 키워드가 봇물 터지듯 분출하고 있다. 공동부유의 핵심은 분배 기능 강화로 소득분배 질서를 다시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기업들은 이제 부를 쌓을 생각일랑 단념하라는 노골적인 압박인 셈이다.

중국 정부는 시 주석 발언 이후 일사분란하게 공동부유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생사여탈권이 공산당의 손에 있음을 알기에 기업들이 즉각 반응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당에 밉보였던 핀테크 기업들의 릴레이 기부가 이어졌다. 이들은 당장 사회공헌에 쓰겠다며 1000억 위안(약 18조원)을 헌납했다. 본사가 저장성에 있는 지리 자동차는 직원 1만여명에게 6000억원이 넘는 회사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공동부유 정책은 40여 년 전 유예한 '계급투쟁' 노선으로 시계 추를 돌려놨다. 선대 지도자 덩샤오핑은 1978년 오늘날 중국 번영의 토대가 된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했다. 이후 중국은 분배를 유예하고 성장 엔진을 풀가동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성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늘도 그만큼 깊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 사회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일까. 14억 중국인 중 6억명이 월수입이 1000위안(약 18만원)에 불과한 빈곤 상태라는 조사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중국의 상위 1% 부자가 전체 부의 31%를 소유하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소득 하위계층의 불만이 폭발직전이다. 이러다간 당원이 9000만명에 달하는 중국 공산당이 문을 닫을 판이다.

실제 중국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비판한다. 이런 세태를 드러내는 유행어가 '탕핑'과 '네이쥐안'이다. 탕핑은 반듯이 눕는다는 뜻이며, 네이쥐안은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소모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수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탕핑족임을 선언했다. "나는 탕핑을 하겠다. 네이쥐안은 너희들이나 하라"며 자포자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과 결혼, 출산, 내집 마련 등의 꿈은 넘사벽이 된 현실에 대한 개탄과 비아냥거림이다.

중국 정부가 꺼내든 규제의 칼은 사교육과 부동산, 대중문화 영역 등으로 이어졌다.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며 한화로 100조원대 규모가 넘는 사교육 시장을 초토화시켜 버렸고 탈세 혐의로 유명 배우 정솽에게 벌금 2억9900만위안(약 539억원)을 때렸다. 이젠 의료미용산업이 다음 목표라는 얘기도 나온다. 모든 영역에서 '사회주의로의 회귀'다.

일련의 중국 공동부유 강화정책을 보면서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중국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에게서 두 개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외부로는 미국의 리더십 약화에 따른 중국의 자신감과 내부로는 체제유지의 불안감 말이다. 중국은 감시카메라(CCTV)를 거미줄 같이 설치하고 생체정보 수집과 인터넷 검열로 14억명의 생각과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빅 브러더'의 완성형이다.

중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장웨이잉 베이징대 교수가 용감하게 말했다. "시장 지향적 개혁만이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 중산층의 소득을 늘릴 최선의 길은 기업과 시장경쟁을 더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고언마저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공동부유 속에 감춰진 시진핑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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