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선 '예능 정치'
[경향신문]

대선 주자들이 섭외가 들어오길 학수고대하는 TV 무대가 있다. 젊은층의 시청률이 높은 예능 토크쇼와 주부들이 많이 보는 아침 시사·교양 프로의 ‘초대손님’이 되는 것이다. 딱딱한 뉴스나 TV토론과 재미·웃음이 가미된 예능의 정치적 효능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미나 인생·가족사를 보여줄 수 있고, 무엇보다 ‘독상’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목도가 높은 유력 주자만 설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선 예능의 효시로는 1996년 DJ(김대중)의 일산 집을 찾은 MBC의 <이경규가 간다>가 꼽힌다. 72세의 DJ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서태지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유명해진 것도 2009년 출연한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였다. 안 대표가 ‘청년 멘토’로 뜨게 된 프로그램은 4년 후 박근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로부터 “가족들에게 말도 안 하고 군대 갔다”는 발언 등으로 권고(객관성 위반) 징계를 받기도 했다. 대선을 앞둔 ‘예능 전쟁’은 2012년 SBS <힐링캠프>에서 뜨거웠다. 박근혜 후보가 중학생 시절의 비키니 사진을 공개하며 노래를 불렀고, 문재인 후보는 특전사 사진과 격파 시범을 보여줬다. 2017년엔 뒤늦게 대선에 나선 홍준표를 빼고 여야 대선 주자들이 모두 등장한 JTBC 예능 토크쇼 <썰전>이 많은 어록과 화제를 낳았다.
내년 대선의 예능은 지난 19일 SBS <집사부일체>에서 윤석열 후보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윤 후보는 계란말이 등을 만들어주며 “그냥 형이라고 해” “요리라도 해야 안 쫓겨나고 살지”라고 했고, ‘나에게 추미애란?’ 물음에 스트레스 안 받았다고 했다가 거짓말탐지기에 걸렸다.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방송 뒤 검찰 고발 사주·가족 의혹처럼 민감한 문답은 없고, 윤 후보가 하고픈 말만 옮기며, 사시 9수나 검찰 좌천을 미화했다는 논쟁이 뒤따랐다. 이 프로그램은 이재명·이낙연 편이 이어지고, 홍준표 후보는 TV조선 <와카남>에 출연한다. 대선 예능은 계속될 것이다. 숨겨진 인간미와 보여주려는 이미지, 사실관계와 미화를 구분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예능이지만, 방송도 선을 넘어선 안 된다. TV 속에서 터진 웃음꽃이 유권자 얼굴과 삶에서 피어나는 대선이길 기대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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