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주의에 멍드는 IT 기업 직원들.. 욕설·괴롭힘 언제까지

맹하경 입력 2021. 9.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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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IT) 기업 직원 A씨에게 상사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갑자기 3개월 안에 끝내라고 명령했다.

지난 5월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IT 업계에 만연해 있는 직장 내 갑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정 기간 안에 결과물을 개발해내는 업종 특성상 성과와 실적이 압박의 수단이 되고, 현재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매뉴얼이 이런 IT 기업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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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만 '갑질' 신고 21건
성과 압박 타 업종보다 심해
"실적만능 조직문화 개선해야"
정보기술(IT) 기업 노동자를 대상으로 운영 중인 갑질신고센터에는 한 달 동안 21건의 제보가 도착했다. 폭언과 모욕을 비롯해 실적 압박, 업무 배제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제보들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보기술(IT) 기업 직원 A씨에게 상사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갑자기 3개월 안에 끝내라고 명령했다. 원래 이 프로젝트 계획 기간이 2년이었던 터라 3개월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A씨는 '저성과자'라는 인사평가를 받았다. 상사는 부서 사람들에게 A씨가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A씨는 "회사를 때려치우라고 소리 지르고 화장실 갈 때도 보고하라는 상사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병가를 냈지만, 이마저도 회사는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IT 업계에 만연해 있는 직장 내 갑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달 15일에는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네이버, 카카오 등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모아 조직문화를 개선하란 엄중 경고까지 날렸다.

경각심이 현장까지 전달되진 않는 걸까. 여전히 IT 기업 노동자들은 직장 갑질에 괴로워하고 있다. 일정 기간 안에 결과물을 개발해내는 업종 특성상 성과와 실적이 압박의 수단이 되고, 현재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매뉴얼이 이런 IT 기업의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폭언·모욕을 정당화하는 '실적압박'

8월 11일~9월 10일 'IT갑질신고센터'에 들어온 신고 현황. 직장갑질119 제공

22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시민단체와 변호사, 노무사 등으로 구성된 IT공동대책위원회가 'IT갑질신고센터'를 지난 한 달(8월 11일~9월 10일) 동안 운영해본 결과, 총 21건의 신고가 도착했다. 폭언과 모욕 신고가 9건으로 가장 많았고, 실적 압박이 7건, 업무 배제나 따돌림, 해고 등 기타 신고가 5건이다.

제보자들이 회사에서 들은 말들은 "X발" "X같네" 같은 욕설뿐 아니라 "이 바닥에선 실력이 인성이야" "야, 네가 그러고도 개발자냐"와 같은 모욕성 발언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폭언과 모욕을 퍼부으면서 노동자의 역량, 실력을 이유로 들었다.

대놓고 실적을 내놓으라고 압박하고 성과를 강요하는 괴롭힘도 다른 업종에 비해 많은 편이다. 거의 매일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대표와 임원에게서 성과를 보여주란 말을 듣고 있다는 B씨는 "결과물이 안 좋으면 쳐낼 거라든가 제 발로 나가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폭언과 압박에도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 프로젝트에서 빼버리는 식으로 괴롭힘이 이어지기도 한다.

안경덕(오른쪽)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가 15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고용노동부-주요 IT기업 CEO 회의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네이버 외에도 카카오, 넥슨코리아,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CEO가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안 장관은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뉴스1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 손봐야"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관련 매뉴얼 개선,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9월 근로감독관집무규정 개정을 통해 사회적 물의가 발생한 사업장 등에 고용부가 사전 고지 없이 전격적으로 근로감독에 들어가는 '특별근로감독' 제도가 도입됐지만, 직원의 극단적 선택이 발생한 이후에나 적용되는 등 소극적 행정이란 지적이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에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며 업무를 압박하는 행위' '객관적 기준 없이 평가, 인센티브, 스톡옵션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행위' 등 IT 기업 특성에 맞는 내용이 추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벤처 정신을 무기로 급성장한 IT 기업들은 성과 중심과 경쟁 지상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경쟁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 대면서 괴롭힘을 방치하면 노동자가 피해를 보는 것뿐 아니라 기업 역시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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