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고구마·북한 무 함께 키워요"..남쪽의 탈북민 농장

김용희 2021. 9.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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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농사경험..주변에 과일·채소 나눠
광주시 광산구 한반도어울림농장 일궈와
광주 광산구 본량동에 있는 ‘한반도어울림농장’에서 탈북민으로 구성된 단체 ‘드림봉사단’ 단원들이 고구마를 돌보고 있다.드림봉사단 제공

“농사는 남북이 똑같잖아요. 고향서 먹던 채소를 키우면서 명절 그리움을 달래고 있어요.”

지난 14일 찾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량동 ‘한반도어울림농장’. 1320㎡(400평) 규모 큰 밭에서는 고추, 상추, 고구마, 배추, (북한)무 등 각종 채소가 가을 햇빛을 받으며 한창 자라고 있었다. 이곳 농장주는 탈북민 70여명으로 구성된 드림봉사단이다.

올해 광산구 시민농업사업 공모에 선정돼 올해 3월부터 가꾸기 시작한 ‘한반도어울림농장’은 단원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향수도 달래는 공간이다. 말투나 문화 차이로 남한 생활에서 벽을 느낄 때마다 고향이 그리워지곤 하는데, 농사가 좋은 소재더란다. 그래서 남북한이 어우러진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한반도어울림농장으로 지었다.

전체 400평 가운데 350평은 공동재배, 50여평은 단원 10명이 나눠 입맛대로 농사를 짓고 있다. 한영실(46) 단장은 “북한에서는 논밭이 모두 국가 소유니까 개인 밭은 생각도 못 했다. 텃밭이 지원되는 기간은 1년이 채 안 되지만 북한에서는 농지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단원들이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북민 봉사단체 ‘드림봉사단’ 단원들이 ‘한반도어울림농장’에서 재배한 깻잎을 이웃에게 선물하기 위해 다듬고 있다.드림봉사단 제공

공동재배 밭에서는 어려운 이웃이나 혼자 사는 탈북민들에게 나눠줄 작물을 주로 키운다. 옥수수를 심어 지난달 광복절 때 이웃에게 한 봉지씩 전달했던 단원들은 올겨울에는 해남 꿀고구마를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키우고 있다. 김장 선물을 위해 한쪽 밭에는 배추도 심었다.

농장 한쪽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는 ‘북한 무’도 키우고 있었다. 향수를 달래기 위해서다. 당근 모양에 껍질은 빨갛고 안은 하얀 북한 무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어 북한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고 한다. 쑥갓과 비슷한 영채 나물은 북한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의미를 찾자면 가지도 그에 못지않단다.

2009년 남한으로 왔다는 정경해(41·가명) 씨는 “탈북민 대부분은 남한으로 오기 전 10여년을 중국에서 보내 북한음식과 중국음식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북에 있을 때 가지는 허기를 달래려 날것으로 먹곤 했는데, 중국에서는 요리를 만들어 먹으니 매우 맛있었다. 북에서의 힘든 시기와 중국에서의 삶이 모두 떠오르는 채소”라고 말했다. 곳곳에 보이는 고수도 중국 체류 시절 입맛을 들인 것이다.

광주 탈북민 봉사단체 드림봉사단이 일구고 있는 한반도어울림농장 전경.드림봉사단 제공

흙과 함께 하는 노동이 절대 쉬울 리 없지만, 단원들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농사를 더 빨리 시작할 수 있었다면 마늘을 심어 삼모작도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한 단장은 “북한은 기온이 낮아 일모작만 할 수 있는데, 남한에서는 다양한 작물을 번갈아가면서 심을 수 있어 농사짓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광산구 생명농업과 도시농업팀 유진 주무관은 “탈북민 밭은 일반시민 밭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리된 모습이다. 자투리땅도 남기지 않고 농작물을 심어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드림봉사단 단원들이 한반도어울림농장에서 키운 옥수수를 혼자 사는 탈북민 등에게 전달하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드림봉사단 제공

텃밭 운영을 지원하는 류동훈 시민행복발전소장은 “탈북민은 모두 유기농 전문가들이다. 북한에서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옥수수를 두 개씩 심어 서로 지지하게 만드는 등 한국 농사법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기회만 된다면 탈북민들을 도시농업 강사로 초청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고 했다. 식량난 때문에 농번기엔 도시, 농촌 가리지 않고 초등학교 6학년 이상 주민들은 40일씩 농가에 머물며 농사를 도와야 해 탈북민 대부분은 어지간한 농사법은 다 알고 있단다.

단원들은 ‘한반도어울림농장’이 또다른 탈북민에게 희망을 주길 바란다. 지난 12일에는 추석을 앞두고 ‘한반도어울림 행복드림’이라는 행사를 열어 혼자 사는 탈북민들에게 사과 77상자를 전달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농장에서 재배한 작물로 반찬을 만들어 전달할 계획도 세웠다.

한 단장은 “농장을 시작하기 전 지역주민이 우리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막상 지금은 농사법을 상의하는 등 편하게 지내고 있다. ‘한반도어울림농장’이 탈북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돕는 받침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광주 탈북민으로 구성된 드림봉사단 단원들이 12일 추석을 앞두고 혼자 사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사과 전달 행사를 하고 있다.드림봉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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