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가장 힘없는 사람들 희생 강요하는 '악한 속성' 가지고 있어"

김정수 2021. 9. 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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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인권]양기석 천주교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 인터뷰
수원교구, 정부·교황청보다 10년 당겨 탄소중립 선언
양 신부, 2030년 재생에너지 100% 등 실천 구체화
"신앙인이자 사제로서 관심 가져야 할 환경문제"
1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성나자로마을에서 양기석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을 만났다. 양 신부는 지난 11일 천주교 수원교구의 ‘2040년 탄소중립’ 선언을 이끌어냈다. 김정수 선임기자

지난 11일 천주교 수원교구가 ‘204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교구의 성당들과 소속기관에서 쓰는 전기를 모두 재생에너지 전기로 전환하고, 2040년까지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생산된 물품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까지 상쇄하기로 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정부보다 10년 앞서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선언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는 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양기석(50) 신부다. 지난 15일 경기도 의왕시 성나자로마을에서 만난 그는 “핵발전이나 기후변화나 모두 생명을 위협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2년 사이 ‘탄소중립’ 선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구체적 실천 방법까지 담은 종교계의 탄소중립 선언은 수원교구가 처음이었다. 한국 천주교 14개 교구는 물론 국내 종교단체 중 최초여서 종교계 안팎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변화가 있기까지 깊이 고민하고,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종교단체에서 구체적 실천 계획까지 내놓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처럼 과단한 탄소중립 선언의 배경을 묻자 양 신부는 “사실 수원교구만의 획기적인 게 아니다. 교황청의 지침에 따라서 모든 교회들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방향을 처음 제시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원교구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은 교황청보다도 10년 더 앞당겨졌다. 온난화 진행이 기존 예측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최신 보고서까지 반영했기 때문이다. 양 신부는 교황청 요청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우선순위를 부여해 추진했다.

교황청이 ‘지구의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을 목표로 제시하며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을 요청한 건 지난해 12월이다. 기후변화협약 파리협정 5주년을 기념해 열린 ‘2020 기후정상회의’에 영상 메시지도 보내 교황청과 바티칸시국의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에 시달리는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내용으로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반포한 ‘찬미받으소서’ 회칙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해 교황청이 전세계 가톨릭교회에 제시한 ‘7년 여정’의 일환이다.

양 신부는 “사실 그냥 환경 담당 부서에서 알아서 하면 되지 않나 이런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많았지만, 이것은 전 지구적인 문제이고 우리 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기 때문에 교회 전체가 움직일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교님께 건의를 드렸다”며 탄소중립 선언 준비작업이 시작된 계기를 털어놨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선언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 구체적 실천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교구 내 성당들의 에너지 사용 실태를 파악하고, 국내 다른 교구는 물론 영국성공회를 비롯한 해외 종교계의 에너지 전환 실천사례 등을 조사했다. 여러 차례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도 받았다. 그 결과 단계적 추진 방안까지 뒷받침된 탄소중립 선언이 나올 수 있었다.

사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법 자체는 단순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불가피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해야 한다면 배출한 만큼 흡수·제거해야 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만 100% 사용하려면 직접 발전해 쓰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계약을 맺고 공급을 받아야 한다. 기업들의 ‘RE100’에서는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거나 비싼 녹색 전기요금을 지불해도 그만큼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한다. 수원교구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만들어 쓰는 길을 택했다. 교구 소속 222개 성당이 사용하는 연평균 약 12만7000㎾h의 전력을 자급하려면 100㎾급 태양광 발전소가 200개 이상 필요할 것으로 계산됐다.

양 신부는 “전기만 100% 재생에너지로 자급하면 성당에서 나오는 탄소 배출의 70% 정도가 감축될 것으로 예측된다. 나머지는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숲 살리기나 나무심기 등으로 흡수하는 구조로 만들어 상쇄하려 한다. 이렇게 꾸준히 하면 2040년에는 탄소중립 수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00㎾ 규모의 태양광 설비에는 200평 이상의 땅과 1억5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 땅은 성당 안뿐 아니라 외부의 성지들, 교구 소유 부동산 등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으나, 문제는 돈이다. 100㎾ 규모 태양광 설비를 200개 이상 짓는 데는 단순 계산으로도 300억원 이상 들어간다.

이에 대해 양 신부는 “300억원을 다 모아 한꺼번에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정액 이상 기금이 마련되면 공간이 되는 부지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려는 것”이라며 “본당과 개인의 출자, 출연금 등으로 에너지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 먼저 지어진 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익금 등을 활용해 10년 동안 지어나가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용훈 마티아 주교가 1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 대성당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수원교구 탄소중립 선포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제단 앞에는 신자들이 7년 여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봉헌물이 놓여 있다. 수원/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수원교구의 2040년 탄소중립 범위에 신자들의 가정까지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자들이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 9월까지 1년간을 ‘지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는 해’로 정하고 46개 실천 사항을 선정, 이것을 실천하는 것에 하느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것이란 의미를 부여해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수원교구 누리집의 ‘탄소중립 생활실천 봉헌’ 페이지를 보면 △배달음식 시킬 때 일회용 수저는 빼 달라고 요청하기 △디지털 기기의 밝기와 해상도 낮추기 △불필요한 이메일 삭제하기 △물을 받아서 설거지하기 등의 실천 사항이 쓰레기, 식품, 교통 등 범주별로 정리돼 있다. 신자들이 들어와 자신이 실천한 항목을 표시하면 자신의 실천을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 된다.

양 신부는 자칭타칭 ‘에코’ 신부다. 과천성당 주임신부로 있던 2008년 안성 미리내성지 인근의 골프장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양 신부는 “처음에는 성지 옆에 골프장은 안 된다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반대운동을 끝내고 나자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 가운데 환경문제도 신앙인이자 사제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엔 탈핵 운동으로, 최근엔 기후위기 대응 운동으로 이어졌다. 양 신부는 핵에 반대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이유를 “신앙 때문에,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하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생태계와 기후가 바뀌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태계를 잘 돌봐야 하는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이나 기후변화나 모두 생명을 위협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과 부딪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원교구의 탄소중립 선언 사례를 언급하며 “노력에 감사하다”고 했고, 17일 한정애 환경부 장관도 이용훈 수원교구장과 면담을 했다. 양 신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앞서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가 지난달 초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연 온라인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양 신부는 “인류가 여태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상황이 닥치고 있는데 계속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니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안 나오는 것 같다는 얘기들을 했다”고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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