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집회 현장 '욕받이' 되고, '불쇼' 말리고..'대화경찰'을 아시나요

이사민 기자 2021. 9. 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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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지난 2월 1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정보과 소속 대화경찰 권은진 경위(43)가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 진행에 항의하며 차량 위에 올라간 한 유튜버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사진=권은진 경위 제공


서울 도심 속 좁은 골목에서 사람 500명과 차량 50대가 모이는 시위가 '안전하게' 열릴 수 있을까.

2019년 서울 중구에 있는 한 대기업 본사 건물 앞에서 개인사업자 신분이던 직원들이 새로 노조를 조직해 집회를 예고하면서 남대문경찰서 소속 권은진 경위(43)는 이같은 고민에 빠졌다.

노조원들이 예고한 집회 현장은 본사 건물을 둘러싼 좁은 골목. 또 이들이 예고한 인원대로 집회가 열리면 교통 체증은 물론 자칫하면 인명사고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권 경위를 비롯한 대화경찰들은 노조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집회 당일에는 차량 25대만 참여했고, 집회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노조·탈북자·어르신 "다 만난다"…'대화경찰'을 아시나요
한국형 대화경찰은 스웨덴의 '대화경찰(Dialogue Police)'에서 시작된 제도로 우리나라에선 2018년 8월부터 도입·시행됐다. 권 경위와 같은 대화경찰은 각종 집회·시위 현장에서 인근 주민이나 집회 참여자 등과 소통해 갈등을 중재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경찰은 노조, 탈북자, 보수·진보단체 등 각종 사람을 현장에서 자주 만난다.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차량 위로 올라가는 건 예삿일이다. 간혹 과격한 이들 중에선 욕설을 쏟아내거나 '불쇼'를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이도 있다. '베테랑' 대화경찰인 권 경위도 처음에는 이들과 소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고향이 부산인 그는 특유의 억양 때문에 대화하다가 오해를 사기도 했다.

권 경위는 갖은 고민 끝에 대화경찰이라는 직에 알맞게 자신만의 친근함을 무기로 삼았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 대신 자신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선물을 나눠준 것. 그는 마스크 줄, 일회용 세척티슈 등을 사비로 구입해 근무 외 시간을 들여 이를 직접 하나하나 포장했다. 권 경위는 이를 가리켜 '뇌물'이라고 웃으며 소개했다.

뇌물은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권 경위는 "'아는 사람' 데이터는 무시 못 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 노조원이 집회 현장에서 공격적으로 나오면 권 경위로부터 '뇌물'을 받으며 안면을 튼 주변 노조원들이 먼저 나서 말리기도 했다. 또 "보수단체 집회에 나온 어르신들에게 '뇌물'을 드리면서 이분들 말씀을 들어드리면 오히려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며 귀가하신다"고 한다. 권 경위의 섬세한 접근법이 평화 집회에 일조하는 셈이다.

또 권 경위는 "최대한 현장에 많이 나가보려 한다"며 "그래야만 현장에 대한 나만의 데이터가 쌓인다. 이것만이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 잘 대응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경찰 권은진 경위가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뇌물'. 권 경위는 소정의 상품을 사비로 구입해 일일이 직접 포장해 준비한다. 그의 가방 안에는 '뇌물'이 늘 여럿 준비돼있다. 언제든 집회·시위 현장으로 달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사민 기자
'욕받이' 되면서 PTSD까지…그럼에도 "두렵지 않다"
물론 활동이 언제나 좋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권 경위는 지난해 7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 설치를 두고 보수·진보 단체가 대치한 현장에 투입된 이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기도 했다. 당시 시민분향소가 서울시청 앞에 설치되자 이를 두고 박 전 시장 지지파 100여명과 반대파 40여명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권 경위는 두 단체 사이에 설치된 질서유지선에서 이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 단체는 서로를 향해 욕설하고 비아냥거리는 등 '초흥분' 상태였다. 권 경위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3일간 자리를 내내 지키면서 양쪽에서 쏟아지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권 경위는 "대화경찰은 참는 게 일"이라면서도 "당시엔 자면서도 욕이 들려왔다"고 했다.

장기화하는 코로나19(COVID-19)도 대화경찰 업무를 더 어렵게 한다. 코로나19로 1인 시위 외 모든 집회·시위가 금지돼 시위대를 설득할 방법과 여지도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현장에 나갈 때마다 마스크, 페이스실드, 조끼 등으로 무장해 몸은 더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권 경위는 "근무복만 입고 현장에 출동하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권 경위는 얼마 전에도 술에 취해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도 모른 채 길거리에서 잠든 청년을 근무 외 시간에 마주치고 그를 지나치지 못해 직접 귀가시켰다.

권 경위는 "경찰이라면 누구든지 있는 직업병"이라며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만 다하자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권 경위는 취재진과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또 다른 차량집회·시위 현장으로 급히 달려 나갔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소속 대화경찰 권은진 경위(43) /사진제공=권은진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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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민 기자 24m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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