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유엔 수장까지 말렸지만..'바이든 vs 시진핑' 날 세운 연설

이정민 입력 2021. 9. 2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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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사무총장의 경고..."미·중, 완전히 고장난 관계"

유엔총회가 시작 전인 20일(현지시간),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AP통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막을 내린 '냉전'이란 단어가 30여 년이 지나 최대 국제기구 수장의 입에서 다시 나왔기 때문입니다.

구테흐스 총장의 경고는 미국과 중국 모두를 향했습니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완전히 고장나 있다(completely dysfunctional)'고 평가하며, 양국 간 문제가 다른 지역까지 확대되기 전에 관계를 회복하라고 청했습니다. 남중국해, 인권, 경제, 사이버 안보 등에 대해 이견이 있다 해도 기후변화나 무역, 기술 등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AP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출처:AP)


두 나라의 지정학적, 군사적 전략이 위험을 가중시키고 세계를 분열시킬 거라고도 말했습니다. 과거 냉전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의 핵무기를 의식해 조심이라도 했지만, 지금의 미중 관계는 그보다 더 위험하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위기 관리의 경험조차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신(新)냉전은 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신냉전' 없을 거라지만...美 "격한 경쟁, 우리 가치와 힘으로 이끌 것"

구테흐스 총장의 경고를 의식한 듯 첫 유엔 연설에 나선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사전 녹화 연설 영상을 유엔 총회에 보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미국'이라는 단어는 서로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상호 간의 경계 수위가 낮아지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브라질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연단에 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에서 갈등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 "신냉전이나 분열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고 전제했습니다.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 될 거라며 무력 충돌 가능성은 배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미국의 초점을 돌린다는 기존 입장을 세계에 분명히 인지시켰습니다. 공산국가인 중국을 감안한 듯 미국의 가치, 즉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격하게 경쟁하면서 우리의 가치와 힘으로 이끌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과정을 동맹, 우방국들과 함께 할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말 만이 아닌 행동으로도 파트너십을 결속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호주의 스콧 모리스 총리와 양자회담을 잡았습니다.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만났습니다. 최근 결성한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의 끈끈함을 확인한 겁니다.

24일에는 일본, 인도, 호주와 안보회의체 '쿼드(QUAD)'의 첫 대면 정상회의도 갖습니다. 아프간 전쟁을 끝내며 우방국들에게 '미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줬고, '오커스'를 결성하면서는 영국과 미국에서 핵잠수함 기술을 전수받게 된 호주가 미리 계약했던 프랑스의 재래식 잠수함 구입을 취소하는 바람에 프랑스로부터 '동맹의 뒤통수를 쳤다'는 비난을 받았던 미국입니다. 리더십 복원에 급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현지 시간 21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화면=유엔 )


■ 연설 녹화해 보낸 시진핑…"민주주의는 특정국 것 아냐"

오전에 연설을 마치고 나서 한참 뒤 오후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연설 순서가 있었습니다. 직접 참석하지 않은 시 주석은 대신 연설을 녹화해 보냈습니다. 미국과 서로 내용을 상의했을 리가 없는데도, 연설은 미국의 발언을 반박하는 듯 들어맞았습니다.

시 주석은 "평화와 발전의 세계는 다양한 문명, 현대화로 가는 다양한 길을 수용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는 특정 국가의 특별한 권리가 아닌 모든 나라의 국민이 누리는 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자국의 가치로 내세우며 중국을 비난하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입니다.

"최근의 국제 정세를 보면, 외부로부터의 군사 개입이나 소위 말하는 민주적 변혁은 해를 끼칠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기치를 내세우며 20년 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이다 철수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습니다.

"소그룹과 제로섬 게임을 지양"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한다며 잇따라 만든 '오커스'와 '쿼드' 등의 소규모 안보협의체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중국 견제를 그만둘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타국을 침략하거나 괴롭히거나 군림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듯 발언한 '약소국을 강대국으로부터 지키겠다'는 말과 정확히 대척됩니다.

현지 시간 21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유엔 총회에 보낸 사전 녹화된 연설 영상


■"군사 충돌은 없을 것"...개도국들에겐 지원 앞세워 '매력 공세'

미국과 중국은 군사 충돌 같은 강경 대립의 가능성은 앞다퉈 부정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시 주석도 "중국은 언제나 세계 평화의 건설자"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중 관계를 바라보는 세계의 불안감을 씻기 위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을 향한 '매력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개도국의 기후변화 극복 지원을 위해 기존 약속의 두 배인 천억 달러의 지원을 다시 약속했고, 전 세계 기아 퇴치를 위해 100억 달러 지원도 하겠다고 했습니다. 맞서듯 시 주석도 연내에 개도국에 대한 백신 1억 도스 무료 제공을 약속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연설로 날선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직 정상회담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 내년 1월까지도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다면, 1993년 이래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 해 중국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 사례가 됩니다. 코로나19 상황을 배제할 순 없지만 그만큼 미중 관계가 악화돼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4일,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초 시 주석과 전화통화를 가지며 제안한 대면 정상회담을 시 주석이 거절했다고 보도했지만, 미국 백악관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습니다. 오는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이나,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계기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정민 기자 (ma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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