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순간까지 알 품었다... 1억년 보관된 거미의 모성애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2021. 9. 22. 1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서 발굴한 호박 속에서 최후 순간까지 알 품은 거미 발견
호박 속에서 발견된 9900만년 전 거미 암컷. 왼쪽은 위에서 본 모습이고 오른쪽은 배를 보여준다. 거미가 알들을 품은 채 화석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영국왕립학회보B

1억년 가까운 시간도 거미의 모성애(母性愛)를 훼손하지 못했다. 미국 캔자스대의 폴 셀던 교수와 중국 수도사범대의 렌 둥 교수 연구진은 지난 15일 “미얀마에서 발굴한 호박(琥珀) 속에서 새끼를 품고 있는 9900만년 전 거미 암컷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영국 왕립학회보 B’에 실렸다.

호박은 나무 수지가 굳어 단단해진 보석이다. 호박 속의 거미는 배에 알 주머니를 품고 있었으며, 방금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보이는 어린 거미들도 같이 발견됐다. 이번에 미얀마에서 발굴된 호박 네 조각은 거미가 새끼와 알을 보살폈음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호박 조각 네 개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알 주머니를 배에 품고 있는 암컷 거미가 갇혀 있는 호박이었다. 호박 속의 어미는 송진에 갇혀 죽어가는 순간까지 알 주머니를 보호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셀던 교수는 “거미는 작은 새끼들이 들어있는 알 주머니를 잡고 있는데 암컷 거미가 알을 보호하려고 할 때 볼 수 있는 자세”라며 “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호박 속에서 발견된 9900만년 전 거미들. 막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들이다. /영국왕립학회보B

연구진은 “턱에 나있는 송곳니와 더듬이다리, 발목마디에 나 있는 감각털로 보아 지금은 멸종한 ‘라고노메피대과(科)’의 거미 암컷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거미는 백악기(1억4500만년~6600만년 전) 북반구에 살았다. 다른 호박 세 개에는 각각 어린 거미 24마리와 26마리, 34마리가 들어있었다.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확인한 결과 눈과 다른 신체 특징으로 보아 모두 한배에서 나온 형제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호박에는 알들을 감싼 거미줄도 보존돼 있었다. 과학자들은 거미가 처음에는 알을 감싸기 위해 거미줄을 쓰다가 나중에 먹이를 잡는 데까지 활용하게 됐다고 본다. 연구진은 “호박 속 커다란 눈 두 개가 정면을 향한 것도 라고노메피대과 거미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며 “거미집을 짓는 거미는 시력이 나쁘다는 점에서 이 거미는 뛰어난 눈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9900만년 전 거미 암컷이 거미줄로 지은 집에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의 상상도. /영국왕립학회보 B

거미줄에는 작은 파편들도 얽혀 있었다. 연구진은 파편들도 어미가 알 주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둥지의 일부라고 추정했다. 이는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들이 바로 흩어지지 않고 둥지에 일정 시간 머물렀음을 보여준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어미의 보살핌을 받다가 그대로 호박 속에서 시간이 멈춘 셈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