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 먼지가 되어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도 "살아가보자"

김민호 2021. 9.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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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늘 협상 가능한 대안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몫을 갖는다.

협상의 전략적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주인의 뜻을 먼저 헤아리는 노예적 사고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먼지가 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도 좋다.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보자. 뭐가 되어있든 우리는, 없지 않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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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채효정 최근 '먼지의 말' 펴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늘 협상 가능한 대안을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몫을 갖는다. 협상의 전략적 실패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주인의 뜻을 먼저 헤아리는 노예적 사고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채효정의 글 중에서

정치학자 채효정은 ‘대학도 무상등록금 도입과 국공립화 전환 논의를 시작하자’면서 이렇게 썼다. 그것이 인구감소에 대비하면서 평등교육을 실현하고 고등교육을 정상화하는 합리적 대안이라고 이야기했다. 글이 세상에 공개된 날로부터 2년여가 지났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수도권 대학들은 학생이 급감해서 존립이 어려운 상태다. 채효정은 ‘등록금 철폐를 원하면 등록금 철폐를, 더 많은 국공립대가 필요하면 더 많은 국공립대를 요구하자. 그래야 거기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다’라는 말로 글을 마쳤다.

채효정은 대학의 기업화와 비민주성에 문제를 제기해온 독립연구자다. 그 자신이 대학에서 해직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글을 꾸준히 써왔다. 월간지와 일간지에도 기고하고 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글도 있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 글도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은 문을 닫자는 여론이 고개를 든 상황에서 “더 많은 국공립대를 요구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힘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로 일하던 채효정(오른쪽)은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학교로부터 이메일로 해고를 통고 받았다. 채효정은 부당한 해고라고 항의하면서 강의동 잔디밭에서 강의를 이어갔다. 사진은 그때의 모습이다. 포도밭출판사 제공

그럼에도 채효정은 ‘없지 않은 존재들’에 대한 글을 꾸준히 써 왔다. 사회에서 밀려났거나 그 속에 있지만 존재감이 미미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혹은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그가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글을 묶은 칼럼 모음집이 출판됐다. 책의 제목은 ‘먼지의 말’이다.

'먼지의 말'에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정치학자의 시각이 담겨있다. 한두 문단으로 끝나는 비평마저 날카롭다. 채효정은 초·중·고생의 극단적 선택이 3년간 55% 늘어났다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에서/조용히 사라지고 있다./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교육뿐만 아니라 노동, 빈곤, 정치도 '먼지의 말'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다. ‘근로자 1명 끝내 숨져’라는 글의 내용은 이렇다. ‘근로자’ 1명/이름은 ‘A씨’/’끝내 숨져’/이름 없는 노동자가/혼자 작업하다/사고를 당하고/끝내 숨졌다는/소식/이 소식은 왜/날짜와 장소만 바뀐 채/늘 똑 같은 문장으로 전송되는가.

그러나 비관적 전망이나 울분만 책에 담겨 있지는 않다. ‘먼지의 말’이란 제목은 채효정이 진행한 중학교 수업 내용에서 따왔다. "10년 후에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먼지’라고 대답한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그 말의 뜻을 고민하며 웃고 떠들었다. 채효정은 즐거웠던 일화를 전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먼지가 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도 좋다.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가보자. 뭐가 되어있든 우리는, 없지 않고 있을 테니까’.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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