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체하는 영국車"..'윤여정 어록'에 딱, '질투유발' 랜드로버 디펜더
거친 몸싸움에도 용모단정 '킹스맨' 연상
남이 타면 질투유발, 내가 타면 용기백배
랜드로버 디펜더를 타본 뒤 '윤여정 어록'이 바로 떠올랐다.
배우 윤여정은 지난 4월 영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이 자리에서 "고상한 체 하는(snobbish) 것으로 알려진 영국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영국 출신 디펜더도 영국인들처럼 고상한 척하는 오프로더다. '모험과 도전의 상징'인 정통 오프로더이지만 진흙과 먼지로 뒤덮인 이미지가 아니다. '오프로더 원조'이자 랜드로버의 아버지 격으로 진흙·먼지와 혼연일체 이미지를 지닌 '지프(Jeep)'와 다르다.
피와 땀이 난무하는 거친 몸싸움에도 슈트가 말끔한 영화 '킹스맨'이나 '007'의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점잖은 척, 고상한 척한다.
랜드로버의 원조인 로버는 1948년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발'로 활약했던 군용 지프를 베이스로 디펜더를 개발했다.
지프의 섀시는 그대로 사용하고 로버에서 만든 엔진을 얹었다. 전쟁 이후 부족해진 철을 대신해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만들었다. 랜드로버가 '알루미늄 마술사'가 된 계기다.
당시 디펜더 이름은 '랜드로버 시리즈Ι'. 이후에는 전장에 따라 숏바디는 랜드로버 90, 롱바디는 랜드로버 110로 불렸다. 랜드로버라고 하면 바로 디펜더를 뜻했다. 1989년 디스커버리가 나오면서 디펜더로 이름을 바꿨다.
지프가 전장을 누볐다면 디펜더는 '가는 곳이 길이다'라는 말을 만들며 사막과 아프리카 초원을 휩쓸고 다녔다. 덩달아 모험과 도전을 숭상하는 남자들의 로망이 됐다.
아울러 야성미 넘치는 지프와 달리 멋진 슈트를 입고 타는 '도심형 오프로더'라는 인식도 생겼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고상한 체 하는 영국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오프로더이기 때문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랑한 오프로더라는 사실도 '고상한 이미지'에 한몫했다.
4년 뒤 디펜더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환생했다. 환생한 디펜더는 72년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국내 출시됐다. 롱바디 모델인 랜드로버 110이다. 올해 6월에는 73년 만에 숏바디 3도어 모델인 디펜더 90이 국내 상륙했다.
전장x전폭x전고는 4583x1996x1974mm다.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2587mm다. 디펜더110보다 길이와 휠베이스가 각각 435mm 짧다.
외모는 기존 모델보다 더 고상해졌다. 지프 후손인 랭글러나 독일 군용차 후손인 벤츠 G클래스처럼 깍둑 썰은 모습으로 남성미를 강조했던 모습에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우아함을 더했다.
차체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서다. 그러나 선 굵은 직선과 볼륨감으로 오프로더에 어울리는 근육질을 강조했다. 보닛에는 커다란 글씨로 '90'이 적혀있다. 자신감과 거만함이 함께 엿보인다.
앞에서 보면 위로 돌출된 보닛, 동그랗게 부릅뜬 눈을 닮은 LED 헤드램프, 꽉 다문 입을 연상시키는 수평 라디에이터,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사각형 그릴은 강인하지만 귀엽기도 한다.
뒷모습은 둥글게 처리한 모서리, 계단처럼 층을 둔 차체로 볼륨감을 강조했다. 차체 중앙에 자리 잡은 스페어 휠만으로도 오프로더 감성은 충분하다.
여기에 랜드로버가 새롭게 설계한 최신 알루미늄 보디 D7x 모노코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이전의 보디 온 프레임보다 3배 이상 높은 비틀림 강성을 갖췄다. 최대 3500㎏까지 견인할 수 있다. 짧은 오버행으로 오프로더에 적합한 접근각(31.5도)과 이탈각(35.5도)도 구현했다.
실내는 수평 레이아웃을 통해 단순하면서 깔끔하게 처리됐다. 기능 조작을 위한 버튼이나 터치 시스템도 간소화했다. 화려함보다는 직관적인 기능성과 내구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앞좌석 센터페시아에는 마그네슘 합금 크로스카 빔을 적용했다. 기둥과 보를 노출시키고 볼트와 너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건축 구조물과 비슷하다. 10인치 터치스크린에는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순정 티(T)맵 내비게이션이 탑재됐다.
뒷좌석 공간은 숏바디 모델이지만 평균 체형 성인 3명이 탈 수 있을 수준이다. 센터 터널은 낮고 레그룸과 헤드룸은 넉넉하다. 뒷좌석 좌석 양쪽 루프에는 가로로 직사각형 창이 있다. 개방감과 함께 다락방 느낌도 준다. 트렁크 용량은 297ℓ다. 숏바디 한계로 좁은 편이다.
차고가 높아 운전석에 탈 때는 손잡이 도움이 필요하다. 손잡이는 깔끔한 이미지를 위해 접혀 있다. 손가락을 넣어 꺼내야 한다. 후방 시야도 좁다. 2열 헤드레스트 3개와 스페어타이어 때문이다. 품격과 멋을 위해 불편함은 감수하라는 암묵적 메시지가 느껴진다.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 컴포트, 잔디/자갈/눈길, 진흙, 모래, 바위/암석으로 구성됐다. 자동차모양 아이콘을 눌러 화면을 터치하거나 다이얼을 돌려서 설정한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운전석에 앉으면 높은 단상에서 내려다보는 뜻한 기분이 든다. 왕실 전용 오프로더답다. 스티어링휠은 무거운 편이다.
컴포트 모드에서 저·중속으로 달릴 때는 오프로더의 거친 주행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속방지턱도 텅텅 거리지 않고 무난하게 통과한다. 가속페달을 밟아도 요란 떨지 않는다. 품위를 지키면서 무게감 있게 주행한다.
디펜더 90은 고상한 체하지만 실제 고상하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품격과 품위를 지키겠다는 자존심이 느껴진다.
"잘났어 정말"이라는 시샘이나 비아냥거림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잘나긴 했다. 오프로더이지만 오프로드로 끌고 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디펜더와 '빙의' 돼 내 자신도 잘나 보이길 바라는 심보 때문이다.
물론 오프로드에서도 한가락 한다. 타는 순간 용기백배가 된다. 대신 진흙에 뒤범벅되고 바위에 긁혀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을 감당할 간 큰 소유자는 드물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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