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대하는 선수들의 방법 - 고란 이바니세비치

김홍주 2021. 9. 22.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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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4기 끝에 2001 윔블던에서 우승한 이바니세비치(사진 GettyimagesKorea)

[이준석 객원기자] 지난 7월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크로아티아의 고란 이바니세비치가 이름을 올렸다. 이바니세비치는 안드레 애거시와 함께 1990년대 활동한 테니스 선수다. 그는 2001년 윔블던 결승전에서 패트릭 래프터(호주)를 꺾고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유가 단 한 번의 윔블던 우승 때문일까? 그보다는 윔블던 우승 전 세 번의 준우승을 감내하며 패배의 경험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왼손잡이 서브 앤 발리어인 이바니세비치는 강력하고 정확한 서브를 지니고 있어 잔디 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그는 평생의 꿈인 윔블던 우승 기회를 1992년 20세의 나이로 처음 맞게 된다. 상대는 그 당시 21세의 안드레 애거시로 그랜드슬램에서는 프랑스오픈 2회, US오픈 1회, 총 세 번의 준우승 경험만을 갖고 있었다. 그랜드슬램 성적만을 볼 때 처음 결승에 오른 이바니세비치에 비해 애거시가 우승의 간절함이 더 커 보였다.

그래서일까? 경기 결과는 애거시가 6–7(8) 6–4 6–4 1–6 6–4로 승리한다. 하이라이트를 보면 마지막 포인트에서 이바니세비치의 발리가 네트에 걸리고 우승한 애거시가 코트에 엎드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바니세비치는 네트를 넘어와서 애거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시상식 전까지 수건을 뒤집어쓴 이바니세비치는 수건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그랜드슬램 결승에 올랐으니 애거시처럼 조만간 윔블던 우승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이바니세비치는 정말로 2년 뒤인 1994년 두 번째 윔블던 우승 기회를 잡게 된다. 이번에는 당시 22세 동갑인 피트 샘프라스가 상대였다. 그 시점 샘프라스의 기량은 물이 올랐을 때로 1990년 US오픈, 1993년 윔블던, US오픈, 1994년 호주오픈, 총 네 번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이미 획득했다. 준우승은 1992년 US오픈 1회 밖에 없을 정도로 큰 경기에 강했다.

디펜딩 챔피언 샘프라스는 이바니세비치를 7–6(2) 7–6(5) 6–0으로 이기며 두 번째 윔블던 타이틀을 차지했다. 첫 두 세트는 타이 브레이크를 갔지만 세 번째는 베이글 스코어로 샘프라스에게 세트를 넘겨주며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실감한 경기였다.

세 번째 기회는 4년 뒤인 1998년 찾아왔다(1995년에는 샘프라스를 준결승에서 만나 2-3으로 패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피트 샘프라스였다. 샘프라스는 그 당시 윔블던 황제의 역사를 쓰고 있었다. 호주오픈 2회, 윔블던 4회, US오픈 4회로 총 10회의 우승 기록을 갖고 있었다. 1998년 윔블던에서 우승한다면 기존 최다 우승 기록인 비외른 보리 5회 우승과 타이를 이룰 수 있었다. 이번 경기는 1994년 결승전과 같이 샘프라스의 일방적인 경기가 아니었다. 이바니세비치가 첫 세트를 선취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5세트까지 갔지만 샘프라스가 6–7(2) 7–6(9) 6–4 3–6 6–2로 승리했다. 

이바니세비치는 후에 인터뷰에서 그 당시의 패배를 ‘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패배’라고 회상했다. 아마도 그는 샘프라스가 있는 한 윔블던 우승의 꿈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시상식에서 그의 모습은 세상 모든 것을 잃은 사람과 같았다. 실제로 그후 이바니세비치의 랭킹은 하향세를 보였다. 테니스에 대한 동기를 잃어서인지 부상도 찾아왔다.

2000년에는 브라이튼 인터내셔널 대회 2라운드에서 이형택을 맞아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갖고 있던 라켓을 모두 부숴뜨려 실격패를 당했다. 이바니세비치는 경기 후 “내가 은퇴를 한 뒤에 사람들이 그래도 ‘윔블던 우승은 못했지만, 라켓을 모두 부순 선수’로는 기억할 것이다”라고 자조적인 소감을 밝혔다. 그만큼 윔블던 준우승은 당시 이바니세비치에게는 ‘한’으로 남아있었다.

2001년 이바니세비치는 125위에 머물러 있었다. 윔블던은 이바니세비치가 세 번 준우승한 것을 감안하여 그에게 와일드카드 출전권을 부여했다. 대회에서 이바니세비치의 기세는 놀라웠다. 결승에 오르는 과정에서 전 세계 1위였던 카를로스 모야, 이후 세계 1위를 기록한 앤디 로딕, 마라트 사핀을 물리쳤다. 그렉 루제드스키, 팀 헨만 등 쟁쟁한 선수를 물리친 끝에 결승에서 패트릭 래프터를 맞았다. 래프터는 2000년 준우승자로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바니세비치는 이번이 평생의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했다. 3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이바니세비치는 래프터를 6–3 3–6 6–3 2–6 9–7로 꺾는다. 매치 포인트는 네 번 만에 잡게 되는데, 처음 두 번은 이바니세비치가 자신의 긴장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더블 폴트 실책으로 무산되었다. 

이로써 이바니세비치는 30세가 되기 두 달 전에 윔블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들게 된다. 와일드카드를 받고 윔블던을 우승한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며, 동시에 가장 낮은 랭킹으로 우승한 기록도 갖게 된다. 이바니세비치는 한때 라켓을 모두 부숴뜨려 실격패를 할 정도로 좌절감에 쌓여 있었지만, 자신의 패배 경험을 극복하고 윔블던에 우승한 선수로 기억될 것이다.

현재 이바니세비치는 은퇴 후 코치로서 더 많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하고 있다. 마린 칠리치(1개), 노박 조코비치(5개)의 코치를 맡으며 총 6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이루어냈다.


올 윔블던에서 조코비치의 코치 자격으로 윔블던 우승을 일궈낸 고란 이바니세비치(왼쪽에서 두번째)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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