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당구판 뒤집은 해커 "1승이 목표였는데..나도 난감한 입장"[인터뷰]

이석무 2021. 9. 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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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당구 PBA에서 4강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당구 유튜버’ 해커. 사진=PBA 제공
당구 유튜버 해커. 사진=PBA 제공
[고양=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가면 쓴 당구 유튜버 ‘해커’의 돌풍이 뜨겁다. ‘3쿠션 4대 천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웰컴저축은행)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그 기세를 이어 쟁쟁한 국내 강자들도 잇따라 무너뜨렸다. 어느덧 4강에 오르면서 우승 트로피를 넘보고 있다.

해커는 21일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고양서 열린 프로당구 ‘TS샴푸 PBA-LPBA 챔피언십 2021’ PBA 8강에서 김남수(TS샴푸)를 세트스코어 3-0(15-5 15-6 15-12)로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다.

해커는 지난 19일 열린 32강전에서 쿠드롱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눌러 당구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어 전날 16강전에선 베테랑 김종원(TS샴푸)을 세트스코어 3-1로 이기고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해커의 질주는 8강에서도 멈출 줄 몰랐다. 개인전과 팀리그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던 김남수를 상대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김남수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해커의 실력이 탄탄했다.

해커는 당구 개인방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당구관계자들은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프로당구 출범 이전에도 동호인 자격으로 대회에 출전해 전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한 경험이 있다.

무조건 신비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이나 사진 촬영이 없을 때는 대회장에서도 가면을 벗고 편안하게 다닌다. 중요한 것은 그만의 방식으로 당구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해커는 실력과는 별개로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아마추어가 프로 대회에 초청선수로 참가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프로골프 대회에도 아마추어 선수가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한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경기에 나서는 것은 특혜라는 비판이 나온다. 상당수 선수는 내 표정을 보여주면서 정작 상대 표정은 볼 수 없다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웃는 모양의 가면이 상대 선수를 자극한다는 지적도 있다.

해커도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나도 난감하다”면서도 “내가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상대선수가 위축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을 밝혔다.

해커는 “1차 투어에 나왔을 때 마민캄에 지고 나서 ‘네까짓 것은 프로에게 상대가 안된다’ 등의 얘기를 들었다”며 “2차 투어에서도 내가 쿠드롱에 질 것이라고 생각했을텐데 4강까지 올라오니까 반대로 난감한 입장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선수들에게 안 좋은 기분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질 수는 없다”며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지면 지는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해커와 일문일답.

-8강전을 마친 소감은.

△1세트 뱅크샷이 성공하면서 승기를 가져와 빨리 끝났다. 1세트에는 내 컨디션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2세트 들어가면서 소극적으로 치게 되더라. 수비를 의식하면서 쳤는데 게임이 졸전으로 흘러갔다. 승리의 여신이 내 편을 들어줬다.

-4강에 진출했는데 이 같은 결과를 예상했나.

△생각지 못했는데 4강까지 올라왔다. 너무나 기쁜 마음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이 벅찬다. 내일도 좋은 경기 보여주겠다.

-이번 대회에 출전할 때 원래 목표는 무엇이었나.

△첫 목표는 1회전 통과였다. 지난 1차 투어 때 마민캄 선수에게 힘 한 번 못 써보고 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 번이라도 이겨보자고 했다. 한 번 이긴 뒤에는 쿠드롱과 경기하는 것이 2차 목표가 됐다. 32강전에서 쿠드롱을 이기고 나서는 목표가 사라졌다. 3경기만 치를 줄 알고 옷도 3벌만 가지고 왔다. 쿠드롱을 이기리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목표는 없다. 그냥 매 경기 잘 쳐보자는 것이다.

-이번 대회 경기력에 만족하는가.

△아니다. 오늘 경기도 잘 쳐서 이긴 게 아니다. 1세트만 조금 잘 맞았다. 쉬운 공만 왔다. 잘 친 것처럼 보였는데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남수 선수가 이상하게 뒷공이 안 나오더라. 뭣에 쓰인 것처럼 공이 벽에 달라붙었다. 상대 선수가 잘 안 풀리는 게 나도 의아하다. 마치 누가 나를 밀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면을 쓰고 경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나.

△머리 위에 땀도 많이 차있고 목 아래로도 땀이 가득하다. ‘마스크 쓰면 상대방에게 위압감 줄 수 있다’, ‘포커페이스다’라고 얘기하는데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상대선수가 위축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마스크 안에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예전에 게임을 해봤던 분들도 있다. 내가 잘 치면 위압감이 있겠지만 1차 투어 때 마민캄을 상대로 8-0으로 이기다 역전당했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마민캄이 살아났다. 당구는 당구공이 굴러다니는 모습으로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이다. (가면을 쓰면) 내가 더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초청선수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정식선수로 리그에 참가할 계획은 없나.

△지금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개인적인 시간이 많다 보니 별 생각을 다 한다. 어디까지 올라갈까, 우승하면 어떻게 할까 등등 생각한다. 하지만 정식선수로 등록하는 것은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데 시합을 다니면 일정이 만만치 않더라.

-당구 개인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시청자에게 당구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당구는 게임방송과 달리 오프라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 시청자들과 오프라인상으로 직접 시합도 같이 한다. 개인방송은 내 일상에서 없어지면 안 되는 부분이 됐다. 내 인생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시청자들과 만난다. 원래 내 얼굴을 모르는 분들이 직접 만나면 실망할 때도 있다.

-해커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상대적으로 프로당구의 위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나도 난감하다. 1차 투어에 나왔을 때 마민캄에 지고 나서 욕을 엄청 먹었다. ‘나오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네까짓 것은 프로한테 상대가 안된다’ 등 얘기를 들었다. 2차 투어에 나올 때도 내가 올라가 봐야 쿠드롱에 지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4강까지 올라오니까 반대로 난감한 입장이 있다.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광대일 뿐이었다. 지금은 반대 상황이 됐다. 예전 동호인 시절인 2016년 선수들이 출전하는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우승하고 트로피를 갖고 나오는데 선수들의 표정이 안 좋더라. 그런 기분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질 수는 없다.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지면 지는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나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1차 투어 패배 후 2차 대회는 어떻게 준비했나.

△2차 대회 출전은 일주일 전에서야 확정했다. 연습을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 당구가 잘 맞고 있어서 평소처럼 하면서 시합 때 테이블 환경에 적응을 잘하자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당구장에서 잘 쳐봤자 경기 환경은 다르다. 2라운드 당시 세트스코어 2-0 이기고 있을 때 다음날 쿠드롱과 경기를 대비해 테이블에 최대한 편하게 칠 수 있도록 자세 등을 신경 쓰며 준비했다. 그 덕분에 쿠드롱전에서 잘 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계속 1번 테이블에서 경기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보는가.

△그렇다. 쿠드롱과 칠 때는 몰랐는데 같은 테이블에서 계속 치게 된 것이 확실히 유리하다. 테이블을 알고 치는 것과 모르고 치는 것은 천지 차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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