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아름답다. 당신도 가끔 울지 않는가?"
#205
난 산이나 들을 볼 때보다 종말처럼 저물어가는 도시의 석양을 볼때 더 큰 아름다움을 느낀다.
새벽 철로위를 미끄러져가는 무개화차를 볼 때. 생과 사가 갈리듯 깜빡이는 네온과 그위로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볼때, 띄엄 띄엄 불이 켜진 퍼즐 같은 고층빌딩 창을 볼 때, 기울어진 화물트럭의 지친 얼굴을 볼때, 피뢰침 위로 언뜻 스쳐가는 번개를 볼때, 산동네 아파트에 걸쳐진 무지개를 볼때 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도시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지배적이고 정직한 배경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도시를 저주하고 자연에만 면죄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도시는 아름답다. 도시는 우리가 건설한 숙명이다. 자본과 욕망, 꿈과 좌절이 직사각형의 드라마로 구현된 곳. 도시다.
영화 중경삼림은 홍콩을 배경으로 세기말의 음울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의 백미는 제목이다. 중경빌딩을 '중경삼림(重慶森林)'이라는 단어로 치환한 것은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치트키가 됐다.
울창한 빌딩 숲은 이제 우리의 밑그림이다.
나는 둘레 길을 산책할때보다 도시의 뒷골목을 산책할 때 더 많은 감흥을 얻는다.
불상처럼 묵묵히 앉아 있는 좌판 노점상들, 낡고 기울어진 간판들, 창 틈으로 언뜻 보이는 야근조의 가는 어깨, 마지막 빵을 굽고 있는 그을린 화덕, 바람에 펄럭이는 벽보와 치기어린 낙서들, 그 위를 날아가는 직박구리.
도시는 아름답다.
당신도 가끔 빌딩 숲을 물들이는 석양에 넋을 놓지 않는가. 뜻모를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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