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아닌 '탈출' 아이들의 생존구역..청소년쉼터 사라진다

박동해 기자 2021. 9. 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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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된쉼터②] 학대피해 도망친 아이 받아주는 유일한 피신처
아이에겐 "인생 다시없을 구원의 비"..주민 혐오시선에 문닫아
© News1 DB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2018년 강남구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열여덟 민혁이(가명)는 "제발 집에만 다시 보내지 말아줘요"라고 애원했다. 여덟살 나이에 어린이집에 유기된 민혁이는 자신이 버려진 그 어린이집의 원장에게 입양됐다. 하지만 양부모와 민혁이와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양부모는 민혁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집안에서 허드렛일 시켰다. 한달 정도 초등학교를 다닌 이후에 줄곧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주변에서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오자 경찰이 방문하기도 했지만 양부모는 그때만 민혁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고 손엔 책을 쥐어줬다.

"학교는 한달도 안 다녔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은 저는 집에만 있었고 집안일을 했어요.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잠을 안 재우거나 때리고 감금을 했고 다른 가족들이 외출을 하게 되면 저는 화장실에 가둬놓고 나갔어요. 왜 가둬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민혁이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일을 하면서 지내야 했다. 민혁이는 가족들이 자신을 짐승이나 노예같이 취급했다고 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었고 바닥에 앉아 다른 가족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고 민혁이는 말했다.

양부모는 민혁이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자 집안에만 둘 수 없다고 보고 밖에서 일을 시켰다. 물론 임금은 양부모가 가지고 갔다. 나이가 들면서 민혁이는 가정에서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양부모의 가출 신고로 경찰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다 어느 하루 민혁은 가족들의 폭력을 못 이겨 영하 15도의 날씨에 집을 뛰어나왔다. 그날 민혁이는 지하철역에서 하루 노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 찾아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평소에도 몸에 남아있는 멍자국을 보면서 아동학대를 의심하했던 식당 사장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적극적인 증언으로 민혁이의 쉼터 입소를 도왔다.

아동학대 피해자로 보호를 받기 시작한 민혁이는 쉼터에서 연결해 준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쉼터에서 대학입시도 지원받아 현재는 대학에 진학 중이다. 쉼터 퇴소 후에 막막했던 생계도 쉼터 직원들의 도움으로 여러 지원을 받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현재는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민혁이는 쉼터가 자신의 삶을 바꾼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학대 피해로 가정 탈출했는데 '가출청소년'이라며 혐오

뉴스1은 민혁이를 포함해 강남구청소년쉼터를 거쳐 간 6명의 청년들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연구 자료를 통해 쉼터에서의 생활이 청년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폭력과 학대, 방임을 피해 탈출한 6명의 청년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8개월까지의 쉼터에서 지내며 삶의 변화를 체험했다.

2019년에 쉼터에 입소한 찬열이(가명)는 정확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 기억이 남아 있는 순간부터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기억했다. 찬열이의 부친은 손과 발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찬열이를 때렸다. 찬열이는 집에 늘 폭력에 이용될 수 있는 쇠파이프, 몽둥이, 흉기 등이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아버지의 학대가 몇년 동안이나 계속되자 누나와 동생도 찬열이를 무시하고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을 견디지 못한 찬열이는 스스로 쉼터에 연락해 입소를 하게 됐다. 찬열이는 쉼터에 와서야 '처음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어른을 만났고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 News1 DB

강남구청소년쉼터에서 단기로 생활한 뒤 본래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아버지의 폭력으로 10개월 만에 집을 나와 장기 쉼터에 입소했다. 원가정으로 돌아갔을 때의 날들에 대해 찬열은 '늘 웅크려 있고 자신감도 낮아 말라죽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찬열이는 다시 집을 나와 쉼터에 입소할 때 '오랫동안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역시 가정폭력을 경험한 뒤 쉼터에 입소하게 된 종민이(가명)는 인터뷰에서 쉼터를 "인생에서 다신 없을 구원의 비"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쉼터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20년을 살면서 여기에 있었던 그 1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쉼터에 입소하게 되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가정에서의 학대를 경험해 탈출한 경우였지만 집을 나온 '가출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이들이 머무는 쉼터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좋지 않다.

최근 강남구청소년쉼터가 이전 공간을 찾지 못하고 결국 폐쇄 위기를 맞이한 것도 쉼터에 대한 주민들의 불편한 시선이 큰 영향을 미쳤다. 쉼터의 대체 부동산을 찾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대 민원이 반복해서 접수됐다.

실제 강남구청 관계자는 주민들이 청소년쉼터를 '기피시설'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결국 주민들 설득에 실패한 강남구는 시설 폐쇄를 결정했고 지난달말 시설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태화복지재단에 '그동안의 사업을 종료하고 12월까지만 시설을 임시로 운영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임성권 강남구청소년쉼터 사회복지사는 "'가출청소년'이라고 하면 부모 세대들은 '비행청소년'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에 집을 나오는 친구들은 아동 학대피해자가 많다"라며 "맞고 죽을 뻔해서 집을 뛰쳐나왔는데 비행청소년이라고 배척하면 이 친구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말했다.

더욱이 임 사회복지사는 쉼터에서 퇴소하고 자립을 한 청년들의 경우에도 막막한 생계와 사회 적응의 어려움으로 자주 쉼터를 찾거나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데 만약 쉼터가 없어진다며 이 청년들에 대한 사후관리도 앞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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