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러 무작정 서울로 갔던 친구들은 어찌 됐을까

한겨레 2021. 9. 2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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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월간 풍경소리]가지꽃

그때 그시절 사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아이들 가슴에

예쁜 꽃이 피어나기를…

오래 전 일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 약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농사를 짓고 있는 동무가 일손이 필요하다며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약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어 휴가를 내어 김제로 향했다. 사실 나는 농사일도 모르면서 동무 도와주러 간다는 핑계로 놀러 가는 것이었다. 기차도 오랜만이었고 농촌 풍경을 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너른 들판이 보이고 미루나무 길도 보이고 멀리 흙먼지 날리며 지나가는 시골버스가 반갑기도 하였다.

얼마 만에 걸어보는 시골길인가? 전주 방향 이정표가 보이고 길 왼쪽으로 낡은 기와집이 보였는데 엉성한 블록 담에 녹슨 철문이 동무네 집이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두 일하러 나갔는지 조용했다. 마당 오른쪽에 살림채가 있었고 논 쪽으로 향한 슬래브 처마 밑에 펌프가 있었다. 나는 물을 받아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빨아 널고 몸을 씻은 다음 평상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부엌 옆에서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던 깜순이는 내가 무섭지도 않은지 짖지도 않고 꼬리만 계속 흔들어댔다.

이튿날 동무 어머니가 장에 가서 고추 시세를 알아보라하여 어제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장터로 갔다. 장날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른 농산물보다 빨간 고추를 내다파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서너 군데 들려 고추 시세를 알아본 다음 장터 구경을 하고 돌아 나오는데 저만치 길 한쪽에서 쓸쓸한 모습으로 가지를 팔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몽땅 1000원’이라고 써 놓은 팻말이 가지가 가득 담겨 있는 지게에 꽂혀 있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지게까지 포함한 가격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잡았다.

음악가 한돌. 사진 조현 기자

“이런 호랑말코 같은 놈아, 어디 와서 염장질이야?”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엄청 잘못했다. 아무리 농사일을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소중한 지게를 팔겠는가. 아저씨한테 죄송하다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지를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가지 하나에 얼추 20원 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농산물 가격이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싸게 해도 하나에 100원은 쳐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저씨의 심정도 모르고 지게까지 포함한 가격이냐고 물어보았으니 정말이지 얻어터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시골 다방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권투 중계를 보고 있었다. 나도 잠간 서서 다방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공격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건지 얻어맞는 선수를 응원하는 건지 아무튼 얻어맞고 때릴 때마다 손님들이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좋겠다마는 이 더위에 천 원을 벌자고 혼자 싸우고 있는 아저씨가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 마담이 들어오라고 했지만 커피 마실 돈이면 막걸리를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삼거리 가게 느티나무 밑에서 동네 아저씨들이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갈증도 나고 해서 한잔 마시려고 했으나 나한테 화를 내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라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가지 한 지게 다 팔아봐야 라면 10봉지! 자장면 2그릇! 소주 5병!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집에 왔는데 갑자기 고추 값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다시 장터에 갔다. 고추 거래 시세를 제대로 알아보고 아저씨를 만나면 가지를 몽땅 사가지고 장 보러온 할머니들한테 조금씩 나누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제보다 사람들이 없었고 가지 팔던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아, 어제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이 없다.

장터를 벗어나 길을 걷는데 길 건너편에 웬 아이가 가지 밭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시름에 잠겨있는 건지 얼핏 보아도 쓸쓸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동무들과 함께 서울 가서 돈을 벌고 싶은데 식구들이 못 가게 했을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때였다. 느닷없이 어제 가지 팔던 아저씨가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 아이의 아버지인 것 같았다. 서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는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어깨를 들멍거렸다.

문득 약방에 자주 오는 순이라는 아이가 떠올랐다. 순이도 고향이 김제라고 했는데 혹시 이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동무들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가 성남까지 오게 되었다는데 사실 나는 순이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순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잠 안 오는 약을 사러 왔고 공장 일이 끝나면 야간학교를 다녔다. 순이에 비하면 나는 세상을 열심히 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 내가 비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어제 본 삼거리 가게가 또 나타났다. 가게는 어느 길에서 오든 마주쳐야 하므로 그야말로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가는 정거장 같았다. 그날도 느티나무 밑에서는 어제처럼 막걸리 잔이 오고갔다. 시원한 막걸리가 나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 가지 밭에 앉아 있던 아이의 모습이 나를 머뭇거리게 하였다. 나는 그냥 덥고 목마른 거지만 그 아이의 마음은 물 마른 땅처럼 답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픽사베이

막걸리의 유혹을 뒤로 하고 동무네 집을 향해 걸었다. 농사일 도와주러 오긴 했지만 별로 도와준 것도 없이 몸만 쑤셨다. 몸이 쑤신다는 것은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 건데 안 쓰던 마음을 써서 그런지 마음이 쑤시고 무거웠다. 자꾸만 가지 팔던 아저씨와 가지 밭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때 내 옆으로 검은 자동차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갔다.

“저런 호랑말코 같은 놈, 이렇게 먼지를 뿌리고 가면 어쩌라는 거야?”

흙먼지는 길가의 풀잎에도 내려앉고 땀에 젖은 내 몸에도 내려앉았다. 사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쌀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금연 광고를 하면서 담배는 왜 파는지 심지어는 과일이나 채소가 열리는 나무들은 꽃이 없는 줄 알았고 반대로 매화나 배꽃을 보고는 그냥 예쁘다고만 했지 거기서 열매가 열리는 줄도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고향의 봄’을 배울 때에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를 알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채소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조금 전 가지 밭에 앉아 있던 아이 옆에 보랏빛 꽃이 보였는데 나는 그 꽃이 궁금하여 동무 어머니를 보자마자 물어보았다.

“어머니 가지 밭에 보랏빛 꽃이 보이는데 그게 무슨 꽃이에요?”

“야 이눔아, 가지 밭에 피었으면 가지꽃이지, 너는 유치원아이처럼 뭘 그런 걸 물어보냐?” 나는 김제에서 그렇게 가지꽃을 만났다. 가지꽃에 대한 첫 느낌은 슬프다는 것이었다. 가지 밭에 쓸쓸하게 앉아 있던 아이와 천 원을 벌려고 가지 한 지게를 메고 장터에 간 아저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농사일을 하나도 모르던 나였지만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나는 ‘노래나’ 만들자가 아니라 ‘노래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동무네 집을 나서는데 동무 어머니가 집에 가서 먹으라며 먹거리 한 보따리를 꾸려 주었다. 솔직히 농사일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밥만 얻어먹고 가는 것 같아서 얼마나 미안했던지 동무 어머니를 볼 낯이 없었다.

기차 타고 가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데 가지꽃이 눈에 아른거렸다. 가지에 꽃이 핀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가지꽃이 보랏빛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슬프게 생겼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지밭에 앉아서 쓸쓸하게 먼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 잠 안 오는 약 사 먹고 공장 다니고 야간학교 다니는 순이, 모두 다 가지꽃을 닮았다.

나는 엉터리로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동무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 청소년이 아니라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도 청소년이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아이들 가슴에 예쁜 꽃이 피어나기를…

보랏빛 가지꽃, 가지꽃 위에

고추잠자리 날아와서 무슨 얘기일까

가지를 따다가 지게에 담아

장에 나가 팔아 보니 별것 아니구나

우리 동생 순이가 서울 간다는데

서울에 가면 무슨 수로 돈을 번단 말이냐

느티나무 그늘 밑에 동네 아저씨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막걸리 한잔

터벅터벅 걷다 보니 목이 타오르네

나도야 냉막걸리 마시고 싶다

마시고 갈까 그냥 갈까 머뭇거리다가

순이 얼굴 떠올라 그냥 걸었네

점잖은 자동차가 내 옆을 지나

흙먼지 날리면서 마구 달려가네

남의 속도 모르면서 먼지는 왜 날린담

까닭 없이 미워지네 검은 자동차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네

비라도 내렸으면 참 좋겠다

가지 밭에 순이 혼자 무슨 생각일까

보랏빛 가지꽃 쓸쓸하구나

-<가지꽃>, 1980/1989

글 한돌/<홀로 아리랑>, <개똥벌레>,<조율>,<불씨>,<유리벽>,<터> 등의 작가 작곡가, 가수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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