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리먼사태 공포..세계증시 흔들
홍콩·유럽 이어 美·日도 출렁
시진핑 집값 규제 본격화하자
부동산 위축되며 유동성 악화
◆ 中헝다 악재에 세계증시 휘청 ◆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인 것은 헝다그룹이 오는 23일 도래하는 채권 이자(8350만달러)를 내지 못할 것이며, 이것이 새로운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발 리먼브라더스' 사태라는 해석이 나오는 등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더구나 21일(현지시간)부터 열리는 미 연방준비제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시그널이 나올 가능성도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헝다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으면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지며 '9월 조정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제2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중국 정부가 급등한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대출 규제에 나서면서다. 글로벌 신용평가업체 S&P는 20일 "헝다그룹이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연쇄 파산하며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는 한 중국 정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싱가포르의 채권 애널리스트인 저우촨이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최악의 부분은 헝다가 붕괴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의 주택 건설업체들이 헝다가 초래한 쓰나미에 익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 주도로 헝다그룹을 인수해 구조조정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1997년 설립된 헝다그룹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다. 작년 말 기준 1조9500억 위안(약 355조원) 이상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헝다 신용등급을 강등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헝다가 파산하면 대규모 채권을 보유한 중국 건설사와 중소형 은행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 경제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업계가 무너지면 이들 업체와 거래한 대형 국유은행들이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면서 금융 시스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발 충격이 중국 경제에 '회색 코뿔소(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는 위기)'를 촉발하는 뇌관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미국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중국 투자를 확대한 것이 '비극적인 실수'라고 비판하면서 "블랙록의 펀드매니저들은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위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 노릇을 하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일부 사람들이 헝다가 파산하면 리먼 브러더스 도산 사태처럼 금융 폭풍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지만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관련된 몇몇 전문가들도 내게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부동산 개발 업체들의 부채 감축을 추진하는 와중에 헝다발 위기가 촉발된 것이어서 리먼 브러더스 사태 발생 배경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다. 중국의 주택 자가 비율이 90%에 달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보다 훨씬 낮은 것도 사태 전이 가능성을 낮게 보는 요인이다.
당장 헝다가 발행한 8350만달러(993억원) 어치의 5년물 채권 만기가 오는 23일 돌아온다. 업계에서는 헝다가 이미 많은 협력업체들에 공사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고 금융권 대출이나 채권 발행으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여력이 없어 결국 디폴트를 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 서울 = 이향휘 기자]
중국판 리먼사태 국내 영향은
美 테이퍼링 등 불확실성에
中 헝다 위기까지 설상가상
"中정부 최악 사태는 막을듯"
업종별로 차별화된 장세 예상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증시는 대체로 변동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전기차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중심으로는 호재가 많아 종목별 차별화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은 헝다 충격이 국내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단기 충격은 불가피하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전종규 삼성증권 연구원은 "헝다그룹의 디폴트 위험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부동산 위험을 넘어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연결되는 최악의 금융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헝다그룹 사태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전반적으로 단기적인 충격은 불가피하지만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당국이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는 것을 방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종규 연구원은 "중국은 내년 2월 동계 올림픽 개최와 가을 최고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경기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혼란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헝다 충격 이외에도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 이슈도 증시에 부담요인이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를 점차 완화한다는 의미로 '유동성 파티'가 점차 마무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한국 시간으로는 추석 연휴 직후인 23일부터 리스크가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FOMC가 끝나도 미국 부채한도 협상과 같은 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면서 "여전히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업종별로 차별화되는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전세계 증시를 둘러싸고 각국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또다른 위험 요인이다. 특히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 또한 플랫폼 기업에 독과점 규제를 내놓고 있어 좌불안석인 투자자들이 많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경기가 충분히 호전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독과점 규제를 심하게 내놓으면 강세장이 끝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센터장은 "포괄적으로 금리가 많이 올라가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이 투자자에게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독과점 기업을 향한 규제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재도 있어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세계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맞서 전기차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바이오와 헬스케어 산업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센터장은 "한국은 이미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주가가 오르지 못했던 '리오프닝(정상 생활로 재개)' 수혜주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화점이나 의류 같은 유통업종이나 여행주가 대표적인 리오프닝 수혜주"라고 덧붙였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유동성 환경이 까다로워져 증시가 상승하는 탄력이 둔화됐다"면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산업에서는 공급 과잉이 일어나기 전까지 코스피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 서비스업 경기가 좋아지고 있고 제조업 또한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향휘 기자 / 김규식 기자 /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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