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될까

유희곤 기자 2021. 9. 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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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성폭력 미투운동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일러스트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최근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발의됐다.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환했으며 세계적으로도 형사처벌하는 경우가 드물어 국제기구도 폐지를 권고한 상태다.

21일 사단법인 오픈넷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는 박주민·김용민 의원(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열린민주당) 등이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박 의원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내용을, 김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최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사생활의 비밀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사실의 적시’로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다.

오픈넷은 지난 13일 성명서를 내고 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오픈넷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미투 고발, 소비자 이용 후기, 상사나 권력자의 갑질 행태 폭로, 학교폭력 고발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진실들을 은폐시켜 사회의 발전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법은 제307조 1항에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반의사불벌죄(제312조 2항)이고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사유(제310조)를 두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은 사람에 대한 사회적·외부적 평가(외적 명예)이다. 피해자의 명예가 실제 침해받지 않았더라도 침해될 위험만 있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위험범’도 처벌 대상이다. 조문에 적시된 ‘공연히’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 판례는 ‘사실’을 ‘진실한 사실’이 아닌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상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특히 최근 미투 운동에서 나온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처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는 해외 국가는 드물다. 독일, 스위스, 일본은 ‘진실한 사실’이 입증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미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를 형법상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1년 3월21일,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는 2015년 11월6일 각각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 폐지를 권고했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올 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헌법재판관 다수는 “사회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민사적 구제방안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 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 “공익적 목적이 있을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형법 제310조)이 있어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봤다.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는 핵심적 기본권인 만큼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하고, 국가나 공직자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형사처벌 주체가 될 경우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점,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명예는 헛된 명예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일부 위헌’ 근거로 제시했다. 이들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정정보도·반론보도·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상 절차로 구제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 : ‘형법각론’(최정학·도규엽),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윤해성·김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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