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되어 찾아온 잊을 수 없는 이름들, 《이름이 법이 될 때》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2021. 9. 2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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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의 시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시구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당대 시시각각 우리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이름들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이름은 미래를 위로하는 따뜻한 눈짓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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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당대의 수레바퀴 속 인물들 재조명

(시사저널=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이름이 법이 될 때 | 정혜진 지음 | 동녘 펴냄 | 252쪽 | 1만5000원》

김춘수 시인의 시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시구를 모르는 한국인은 드물다. 그런데 꽃이 아닌 슬픔으로 우리에게 기억나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전태일, 미선이·효순이, 박종철, 이한열 등. 수많은 이름들은 역사보다 오히려 강렬한 이름으로 더 각인돼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승복 어린이'처럼 늙어도 늙지 못하는 운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기자로 15년 동안 생활하다가 로스쿨을 거쳐 지금은 국선 전담으로 일하는 정혜진 변호사는 《이름이 법이 될 때》의 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은 '이름과 법'이 만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고 현재와 미래가 만나고 슬픔이 변화와 만나고 자신의 이름을 가졌던 한 구체적인 개인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 모두의 운명과 만나는 이야기다."

그 이름들은 아직도 모두에게 절절하다. 구의역 지하철 사고의 김군, 태안발전소 희생자 김용균,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만든 태완이, 연예뉴스 댓글 문제를 이슈화시킨 구하라, 미혼부의 권리를 다시 생각하도록 한 사랑이,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 등. 결국 저자의 발문에 따르면 이들의 운명은 우리의 운명과 겹쳐 있다. 누구나 그들이 되고, 우리의 아이들이 그런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슬픈 명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자 세 명이 사고로 죽고, 직업병까지 포함해 하루 평균 여섯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회다. 김용균 이전에 산업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기억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저자는 많은 이가 추모한 '구의역 김군'조차 성과 열아홉 살이라는 나이만 알 뿐 이름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천근의 무게를 가슴에 달고 사는 가족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요청을 거절하는 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태완이 어머니는 아이가 죽고 나서야 법이 통과됐지만, 태완이법 덕에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재심과 화성 8차 사건의 진범을 검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김용균의 어머니, 구하라의 친오빠, 임세원의 동료, 김관홍의 아내 등 산 자들의 고난은 저마다 다른데, 마음은 닮아있었다.

책에는 열한 명의 인터뷰와, 일곱 명의 사람들, 그들의 이름으로 만든 일곱 개의 법이 함께 있다. 각 장의 끝에는 정식 법명과 조항들을 법전 그대로 적었다. 이름이 법이 되기까지의 타임라인을 그려 입법의 험난한 과정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했다.

김춘수 시인은 시의 끝에 이렇게 읊는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당대 시시각각 우리 가슴을 아프게 했던 이름들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이름은 미래를 위로하는 따뜻한 눈짓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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