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게 죄인가"..대출 막힌 '로또 청약' 이젠 금수저 잔치

조성신 2021. 9. 2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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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분양에 이어 공공주택도
중도금 대출 불가 통보
예비청약자·무주택자 피해 우려
"대출총량규제 방식 보완해야"
서울 광진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매경DB]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국가 공인 로또 두가지 중 하나가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됐다. 로또 복권과 로또 청약 얘기다. 로또 복권은 국민 누구나 살 수 있고 추첨 방식도 공정하지만 로또 청약은 가점 등 신청 자격에 현금 동원력까지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

최근 금융당국의 대출 강화로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서 서민들 사이에선 집값이 높은 수도권에서 더 이상 아파트 장만은 불가능해졌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올해 상반기 대출 총액이 급증해 대출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가계대출 억제 목표를 '지난해 대비 5∼6% 증가' 범위내에서 관리하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5%를 상회하자 '6% 선'을 마지노선으로 잡았다. 한국은행의 금융시장동향에 따르면 올해 1~8월 은행 가계대출은 57조5000억원이 늘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이주비·중도금대출 등 포함)이 73.5%(42조3000억원)를 차지했다. 나머지 26.5%(15조2000억원)는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등 기타대출이다.

8월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액 6조2000억원 중 주택담보대출이 5조9000억원, 기타대출이 3000억원이었다. 올해 1~7월 월평균 2조1000여억원씩 증가하던 기타대출은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월평균 5조2000억원씩 늘어나며 증가세는 보였다.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대출 규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실수요자 대출인 전세자금대출이나 이주비대출에 손을 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도금대출에 날아간 인생역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매경DB]
최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에는 일반 분양분 151가구에 3만4537명이 신청해 평균 228.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서 받은 특별공급 청약에도 50가구 모집에 8894명이 몰려 148.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광교택지개발지구 내에서 마지막 분양하는 이 아파트의 공급가격은 전용 84㎡ 9억2630만∼9억8540만원, 전용 60∼69㎡ 6억8090만∼8억2380만원이다. 인근 '광교중흥S클래스' 전용 84㎡의 최근 실거래가(18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아파트 모든 주택형은 중도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분양가 9억원 이하이면 시중은행에서 중도금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 시행사는 "중도금대출 알선은 사업주체 및 시공사의 의무사항이 아니다"며 수분양자 자력으로 직접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분양업계는 사업주체의 중도금 집단 대출 알선 중단으로 그나마 청약경쟁률이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중도금 대출이 막힌 만큼 현금을 보유한 수요자 만의 경쟁으로 좁혀졌다는 것이다. 민간임대주택인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엘' 분양에서도 중도금 대출을 시행할 금융사를 찾지 못해 중도금 대출 여부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금 대출 중단은 민간분양 단지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분양하는 공공분양 단지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서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LH가 분양한 경기 시흥 장현 A-3블록 아파트(451가구) 청약은 평균 1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LH는 분양 공고에서 "금융권의 집단대출 규제로 인하여 중도금 대출이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며, 중도금 집단대출이 불가할 경우 수분양자 자력으로 중도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알렸다.

기존 단지들에서도 같은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화성능동 B-1·화성봉담 A-2구역 신혼희망타운에서도 중도금 대출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내용과 함께 중도금 납부기한을 연장한다는 문자 공지가 전달됐었다. 화성능동은 최근 납부기한을 연장해 은행권과 중도금 대출협약을 체결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화성봉담은 여전히 중도금대출을 맡을 은행을 찾지 못했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중도금대출 중단 우려가 나왔었다. 실제 민간분양 주택에서는 중도금대출 중단 사례가 나왔고 그 여파가 공공주택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양가 9억원을 넘지 않는 경우 중도금의 60%까지는 대출을 알선해주는 게 관례였다. 이를 40%까지 줄여 알선한 사례도 있었다. 최근 평촌 재개발 정비 사업지에 들어서는 평촌 엘프라우드 아파트(2739가구)는 분양가의 40% 범위 내에서만 중도금대출을 알선해 주고 있다. 도시형생활주택으로 이달 29일 당첨자를 발표하는 힐스테이트 남산(302가구)도 분양가의 40%만 중도금대출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년 중저소득 무주택 실수요자는 활로 열어 줘야

주택 공급사들의 대출 알선 외면은 근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 틀어막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은행들이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부동산 대출을 억제하는데다 건설사들 입장에서도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공급하는 족족 수십, 수백대 일의 청약경쟁률을 올리고 있는데 굳이 중도금대출을 알선할 이유도 없다.

시장에서는 중도금대출 규제의 피해는 현금 동원력이 없는 젊은층이나 저소득 무주택자 등 내 집 마련이 간절한 실수요자들에게 집중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집값 오름세가 잡히지 않으면서 집을 마련하려는 심리가 확대돼 2030세대를 중심으로 '패닉바잉(공황구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집값 상승으로 인해 대출 규모 자체가 크게 늘면서 가계대출 증가율도 확대됐다. 최근 나오는 금리인상에 따른 가계대출 부실 우려도 이와 연계돼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중도금 대출 불가 통보가 이어지자 예비청약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을 토로하면서 청약 자체를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에서 청약에 당첨된 후 중도금을 제때 납부하지 못하면 청약자격이 박탈되고 10년간 당첨 제한에 걸린다. 청약 당첨으로 청약통장을 소진하고도 중도금으로 자격이 박탈되면 청약 기회만 날릴 수 있기에 그렇다.

청약에서 실수요자가 빠지게 되면 청약시장은 현금부자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금수저 청약'으로 전락할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중도금 대출 중단은 돈있는 사람만 청약하라는 이야기", "부자만 더 부자되는 정책이 되버렸다"라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하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대출 통로를 열어주는 방안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대출총량규제에 나서면서 관리대상항목은 지정하지 않은 채 총량만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들이 규모는 크지만 실익은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관련 대출 통제에 집중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과 연결되는 대출은 관리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등이 거론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가계대출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모아둔 목돈이 없는 젊은층이나 중·저소득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이는 젊은층이나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에 각별히 노력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고 원장은 이어 "투기적 주택 거래는 규제의 대상이 맞지만, 평생 처음으로 집을 분양받으려는 무주택자나 젊은층은 원리금 상환 능력이 검증된다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현금부자 중심들을 위한 청약시장이 될 수 있는 만큼 실수요자와 무주택자를 배려하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대출총량규제에서 중도금대출이나 전세대출처럼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은 제외하는 방안 외엔 해법이 없다"고 조언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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