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명절, 우리는 김지영이 된다

한겨레 입력 2021. 9. 21. 13:26 수정 2021. 9. 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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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쿵쾅]내 이름은 김쿵쾅
<82년생 김지영> 속 명절 풍경
수십 년 봐온 장면과 똑같아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3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면접 당사자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하는 게 기득권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잖아요. ‘예민하다’는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오히려 칭찬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예민한’ 그가 <한겨레> 온라인 칼럼으로 독자를 찾아갑니다. 20대 여성인 자신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독서 경험을 엮어낸 칼럼 ‘내 이름은 김쿵쾅’ 입니다.
※ ‘쿵쾅’은 단단하고 큰 물건이 서로 부딪칠 때 크게 나는 소리를 뜻합니다. 일부에선 성차별에 분노하고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스트를 가리켜 ‘쿵쾅이’라고 부릅니다. 페미니스트를 입막음하려는 이들이 ‘쿵쾅’의 의미를 변형·독점하려는 시도를 ‘김쿵쾅’이라는 필명을 통해 유쾌하게 맞받아주려 합니다.

얼마 전부터 남자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결혼, 듣기엔 참 예쁘고 아름다운 단어다. 그런데 결혼은 우리 둘 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결혼을 하면 여자에게는 ‘며느리’ 역할이 따로 주어질 예정이라는 것을 25년, 50번의 설, 추석 같은 명절을 보내는 동안 엄마를 보며 체득한 나였다.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내가 남자친구에게 한 첫 질문은 너무도 ‘김지영’일 수밖에 없었다.

“제사 지내요?”

“아니요.”라는 대답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남자친구는 양송이를 썰어 팬에 넣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께서 시집살이를 고되게 하셨고, 할아머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제사를 없애셔서 이제 제사나 차례는 없다”고 했다. 명절에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정도인데, 그 미사는 자신도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제사를 지내는 쪽은 우리 집인데, 그런데도 명절 노동력 착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백년손님’이라 불리는 사위의 지위가 내심 부러웠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김지영 부부가 명절에 부산에 있는 남편의 부모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집에서 지내는 제사도 아닌데 쉴 틈 없이 요리와 설거지를 반복하는 지영,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남편 대현, 손녀를 보느라 바쁜 시가 식구들까지. 내가 25년간 보아왔던 우리 집의 명절 모습이었다. 엄마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늘 주방에서 바빴으나, 제사에는 참여할 수 없어 제사를 지내는 방이 아닌 거실에 있어야 했다. 반면 아빠는 안방에서 가족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가 제사상을 다 차리면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가져와 제사상에 올려놓았다. 엄마 혼자 일하기 버거워 보여 주방을 들락날락 한 것은 늘 언니와 나였고, 오빠는 없었다.

내가 명절마다 주방에 기웃거리며 자잘한 주방일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주방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엄마는 “간단한 것 몇 가지는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도, “요리할 줄 알면 시집가서 네가 다 해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크면 어디서든 특히 “시댁 식구들 앞에서 요리할 줄 안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딸에게 ‘김지영’의 삶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엄마 나름의 노력이었다, 엄마는 평생직장 생활을 했는데도 아빠보다 수입이 적다는 이유로 매일, 특히 명절마다 시댁에서 많은 무시를 당했기에 명절 노동은 본인이 남편보다 수입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남편만큼 혹은 그 이상의 돈을 버는 커리어우먼이 되어 ‘명절 노동을 피하는 값’을 당당하게 시부모님 용돈으로 해결하는 며느리가 되기를 바랐다. 애초에 왜 며느리라는 이유로 그 값을 지불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아무리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도, 제사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명절 노동은 내가 ‘한국 여성’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었지, ‘남편보다 수입이 적은 여성’이기 때문에 지는 부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사 여부를 묻는, 그리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남자친구의 말에 안도하는 나를 보며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다시 한 번 선명해져 서글펐다.

명절 직후에 이혼 소송이 급증한다는데, 그 뒤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아이부터 학생, 커리어우먼, 전업주부까지 가리지 않고 여자라면 ‘평등하게’ 모두를 김지영으로 만들어버리는 K-명절의 마법은 대체 언제쯤 풀릴 수 있는 걸까. 그냥 세대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면 되는지, 집마다 잔 다르크가 한 명씩 나와야 하는지, 아니면 내 예비 시댁은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니 그냥 눈 감고 귀 닫고 안도하면서 살면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국 여성의 비참한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부디 이번 추석 모든 가정에 모든 여성을 모두 김지영으로 만들어버리는 K-명절의 마법이 조금은 사라져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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