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만두가 먹고 싶은 '올드보이' 남기남..정훈이 만화 25년 전시

백승찬 기자 입력 2021. 9. 2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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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목이 없고 허리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남기남. 표주박형 얼굴에 게슴츠레한 눈이다. 대체로 손해보는 삶을 살지만 성깔이 없지는 않다. 처음엔 귀엽고 순박했는데, 갈수록 짜증이 늘었다.

충무로의 이단아 씨네박. 나잇값 못하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하지만 종종 어리석다. 허풍과 과장이 심하고 엄살도 그만큼 심하다.

이들은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1995년부터 25년간 연재된 정훈이 작가 만화의 등장인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등장인물도 늘었다. 당하고는 못사는 김꽃달, 전투력이 상당한 욕장이할마시, 남기남을 능가하는 악역 김똘만도 등장했다. 도중에 6개월정도 휴재한 적이 있는데, 독자의 성화에 잡지 편집부가 급히 정 작가를 다시 불러올 정도로 인기였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주간지 두쪽을 채우는 분량으로 영화를 패러디한 유머를 선보였다.

그의 만화세계를 돌아보는 기획전시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이 내년 3월 20일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박물관에서 열린다.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 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기본적으로 영화를 패러디한 만화지만, 막상 읽어보면 영화와 상관 없는 유머를 펼칠 때가 많았다. <올드보이>편에서 남기남은 직업도 없고 거처도 마땅치 않아 숙식을 제공하는 사설감옥에 금세 적응한다. 다만 군만두가 아니라 가끔 찐만두도 먹고 싶을 뿐이다. 시골 분교로 쫓겨난 비리 교사를 다룬 <선생 김봉두>편에서 남기남은 학부모로부터 촌지를 받기 위해 학생들에게 봉투를 나눠준다. 교단의 남기남이 기대에 부풀어 있는 사이, 학생들은 채변 봉투를 꺼낸다.

따뜻한 정서를 전해주는 작품도 있었다.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편에서 남기남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으로 나온다. 편의점 사장은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남기남을 불러 함께 밥먹으며 말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유통기한 다 돼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편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영화PD 찬실이는 자가격리에 들어간다. 그러자 동사무소에서 주는 생필품을 시작으로 쓰레기 대신 버려주겠다는 주인집 아주머니, 필요한 것 사다주겠다는 친구, 비싼 와인 사서 문앞에 둔 유명배우 등 온정이 답지한다.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 전. 대표작 3편을 3면 애니메이션 월로 재현했다.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정훈이만화, 영화와 뒹굴뒹굴 25년’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씨네21 편집장을 역임한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정훈이 만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패러디가 가진 경쾌함, 유머, 그 밑에 굉장한 연민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은 “그는 굳이 영화를 해석하거나 뒤집으려고 애쓰지 않는다”며 “봄날의 양지처럼 따사롭고 유유자적한 ‘정훈이만화’의 세계는 그냥 영화의 친구다”라고 말했다.

정훈이 작가는 1995년 만화잡지 영챔프 공모전에서 데뷔한 뒤 씨네21과의 인터뷰를 계기로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선 정 작가의 25년 연재작 중 대표작을 볼 수 있다. 일부 작품은 3면 애니메이션 월에 재현했다. 1995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영화의 주요 장면을 포착한 ‘기남이의 한국영화 표류기’도 전시됐다. 데뷔 초창기부터 컴퓨터로 작업한 정 작가가 소장중인 얼마되지 않는 스케치 원화도 볼 수 있다. 정 작가의 영챔프 공모전 당선작 ‘리모코니스트’, 정 작가가 만화를 그리는 과정이 재현된 영상 등도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시간단위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이용방법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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