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코끼리들의 대모험, 그 후

박은하 기자 2021. 9. 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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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국 시솽반나 자연보호구역에 서식하다 여행을 떠난 코끼리들이 지난 6월 윈난성 어느 마을에서 다같이 낮잠을 자는 모습이 발견됐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윈난성 시솽반나 자연보호구역은 생태계 보전이 잘 된 지역으로 이름 높다. 라오스, 미얀마와 국경을 맞댄 지역으로 서울 면적 4배에 해당하는 24만1000헥타르 규모의 열대우림이 펼쳐져 있다. 아시아 코끼리를 비롯해 온갖 동식물이 서식한다.

이곳에 살던 코끼리 14마리가 지난해 3월 느닷없이 숲을 떠났다. 야생 코끼리들이 일정 구역 내에서 옮겨다니는 일은 흔했다. 시솽반나 인근 푸얼시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코끼리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코끼리 매점’을 운영할 정도였다. 하지만 코끼리들의 이번 이동은 달랐다. 그들은 본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계속 북으로 향했다.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코끼리들이 돌아다니다 민가를 습격하거나 농작물을 먹어치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사냥꾼을 만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수도 있었다. 아시아 코끼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에 등록된 멸종위기종이다.

중국 당국과 전문가들은 일단 코끼리의 여행을 관찰하며 이들의 안전한 여행을 돕기로 했다. 코끼리들의 여행에 대한 관찰은 동물과의 공존이란 화두를 던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달까지 18개월 동안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드론을 띄워 코끼리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상태를 관찰했다. 경찰과 모니터 요원 등을 배치해 코끼리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켰다. 차량 이동도 차단했다. 코끼리가 다니는 길목에 옥수수, 바나나, 파인애플 등의 먹잇감도 놓았다. 인공도로를 만들고 길에다 물을 뿌려서 시원하게 만들기도 했다. 윈난성 발표에 따르면 코끼리가 여행하는 동안 대피한 주민은 총 15만명이었고, 드론 973대를 띄웠고, 2만5천명이 코끼리 관찰에 투입됐다. 코끼리가 총 180t을 먹어치웠다.

지난달 8일 촬영된 위안장 강을 건너는 코끼리들 | 신화연합뉴스


코끼리들은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차 몸체를 흔들다가 사이드 미러를 망가뜨려 놓기도 했다. 진흙목욕을 하거나 서로 발길질을 하며 싸우기도 했다. 다같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장면은 ‘옥수수 와인을 먹고 술 취해 잠든 코끼리’로 알려져 전 세계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곤 했는데 코끼리가 취해서 잠들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코끼리들은 어느 새 중국인들의 관심사가 됐다. 신화통신, 펑파이 등을 통해 코끼리들의 모습이 라이브로 중계됐다. 코끼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1년 넘게 장기간 지켜본 과학자들은 코끼리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즐거워 보였던 진흙목욕이나 낮잠은 사실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설명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우두머리가 길을 잃었다는 해석도 있었다.

코끼리들은 지난 6월 시솽반나에서 500km 가량 떨어진 쿤밍에 도착했다. 코끼리들이 이 정도 장거리를 여행한 사례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때까지 세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해 서식지로 돌아가거나 낙오했다. 낙오된 코끼리는 나중에 당국에 구조됐다. 여행 도중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코끼리들은 쿤밍에 도착한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달 초 마침내 윈난성 위안장강을 건너 서식지로 진입했다. 숲을 떠난지 17개월 만이다. 이동거리는 1300km에 달했다. 윈난성 정부는 지난 10일 18개월만에 코끼리들이 여행을 완전히 마쳤다고 밝혔다.

지난달 10일 위안장 강을 건너 서식지로 돌아오고 있는 코끼리들 | 신화연합뉴스


코끼리들이 여행을 떠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조금씩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시솽반나 열대식물원 수석 연구원인 아힘사 캄포스 아르세이즈 교수 등은 코끼리들이 먹이를 찾아 숲을 떠났다는 가설을 담은 학술논문을 준비 중이다. 중국 당국의 노력으로 시솽반나 구역은 성공적으로 보존되면서 코끼리 개체 수는 1980년대 170마리에서 현재 300마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울창해진 숲이 햇빛을 차단하면서 바나나 등 코끼리의 먹이가 될 만한 낮은 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은 오히려 줄었다. 코끼리가 떠나기 전 1년 간 극심한 가뭄도 있었다. 먹이를 찾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보호구역 이외 지역은 개발로 숲이 파괴돼 전체적인 코끼리 서식지가 줄었다는 점이다. 캄포스 아르세이즈 교수는 “코끼리 입장에선 사람이나 농작물, 도시 기반시설과 엮이지 않으며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라며 “이제 우리는 성공의 결과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BBC에 말했다.

시솽반나 자연보호구역의 수석 엔지니어 션칭종은 “코끼리는 돌아다니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이다. 그래야만 다른 지역에 사는 코끼리들과 짝짓기도 해서 유전자풀을 개선할 수 있다”며 “다른 코끼리들이 여행을 떠나는 일이 반드시 또 있을 것”이라고 차이나데일리닷컴에 말했다. 특구를 지정해 해당 지역 안에서의 보존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동물이 이동한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고 국가 전체적인 생태 보호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끼리들이 돌아온 이후 몇 가지 정책이 발표됐다.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코끼리 이동 경로에 식량기지를 설치하기로 했다. 파괴된 서식지 복원에도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코끼리들의 모험이 중국 당국의 생태보전정책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널리 일깨웠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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