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274패 기록한 애거시 "상대의 패배가 나의 승리는 아니다"

김홍주 2021. 9. 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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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애거시는 1990년대 피트 샘프라스와 함께 미국 테니스의 전성기를 이끈 전 세계 1위 선수다.

따라서 세 가지 코트 면(하드, 클레이, 잔디)에서 열린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두 석권한 선수는 애거시가 최초였다.

애거시는 4개 그랜드슬램 대회의 타이틀을 모두 포함한 8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과 더불어 올림픽 금메달, 투어 파이널 타이틀까지 갖고 있어 남자 선수로는 유일한 '커리어 슈퍼 슬램' 타이틀 보유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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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두 번 달성한 로드 레이버와 함께한 애거시(왼쪽)와 샘프라스(오른쪽) GettyimagesKorea

[이준석 객원기자] 안드레 애거시는 1990년대 피트 샘프라스와 함께 미국 테니스의 전성기를 이끈 전 세계 1위 선수다. 그는 오픈 시대 이후 로드 레이버(호주) 다음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로드 레이버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때(1962, 1969)는 호주오픈과 US오픈이 잔디 코트에서 열렸다. 따라서 세 가지 코트 면(하드, 클레이, 잔디)에서 열린 그랜드슬램 대회를 모두 석권한 선수는 애거시가 최초였다.

애거시는 4개 그랜드슬램 대회의 타이틀을 모두 포함한 8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과 더불어 올림픽 금메달, 투어 파이널 타이틀까지 갖고 있어 남자 선수로는 유일한 ‘커리어 슈퍼 슬램’ 타이틀 보유자이다. 여자 선수로는 슈테피 그라프, 세레나 윌리엄스가 있다. 나달에게는 투어 파이널 타이틀, 페더러, 조코비치는 올림픽 단식 금메달이 없기 때문에 커리어 슈퍼 슬램을 달성하지 못했다.

애거시는 커리어 초기, 록스타처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코트의 야생마’의 이미지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샘프라스의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와는 상반되어 둘의 라이벌 구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샘프라스가 서브 앤 발리어, 애거시는 베이스라이너라는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둘의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했다. 물론 상대 전적에서 애거시가 14승 20패로 열세이지만 샘프라스는 프랑스오픈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고, 올림픽 메달 역시 없다는 점에서 애거시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애거시는 이색적인 기록도 갖고 있다. 프로 데뷔 10년 차인 1997년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 손목 부상으로 한 해 동안 24경기 밖에 치르지 못했다. 약물 복용으로 ATP로부터 경고까지 받았다(당시 애거시는 친구가 권한 음료수에 들어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해서 경고에 그쳤다. 하지만 은퇴 후 발간된 자서전에서 약물을 의도적으로 복용했음을 밝혀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톱 스포츠 선수와 배우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브룩 실즈와의 결혼 생활도 파국을 맞았다. 애거시는 이 당시 테니스 경기에 대한 열정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랭킹은 그 해 11월 141위까지 떨어졌다. 

모두들 애거시의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애거시는 1998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애거시는 다시 훈련에 혼신의 힘을 다했으며, 챌린저 대회 참가를 통해 랭킹을 끌어올렸다. 투어 대회에서도 5개의 타이틀을 추가해서 연초 110위였던 랭킹을 6위까지 끌어올렸다. 그 해 말 ATP에서 수여한 기량발전상(the ATP Most Improved Player of the Year)을 두 번째 받았다. 애거시는 커리어 초기인 1988년에도 같은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처럼 애거시는 커리어 기간 동안 눈부신 업적을 이뤄낸 선수이다. 애거시는 자선 활동도 활발히 했는데 라스베가스에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사립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가 설립한 학교에는 테니스 코트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학생들에게 ‘상대의 패배가 나의 승리’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애거시는 공공연하게 ‘테니스가 싫다’는 얘기를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버지로부터의 엄격한 훈련의 이유도 있었겠지만, 테니스 프로라면 감내해야만 하는 뼈아픈 패배의 경험들 때문이 아닐까? 세계 최정상급인 애거시도 커리어 기간 1,114경기 중 274번의 패배를 기록했다. 그중 그랜드슬램 결승전은 15번이 있었고 7번의 패배를 당했다.  


6살 때의 애거시(왼쪽에서 두번째) 가족(1976년)

글= 김홍주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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