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어지러운 건 학자들이 제대로 공부 안 한 탓”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입력 2021. 9. 21. 08:29 수정 2023. 6. 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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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죽어야 끝난다”는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송의달이 만난 사람]

올해 80세인 신복룡 박사는 나이를 잊고 사는 열정과 집념의 인물이다. 만 70세이던 2012년, 그는 33년간 봉직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했다. 그 전에 연구서 <한국 분단사>와 <한국정치사상사>로, 한국정치학회가 선정한 저술상(2001년)과 ‘인재(仁齋·윤천주 전 서울대 총장)학술상(2011년)을 각각 수상했다. 4회 연속(2004~06년) 건국대 최우수 교수로도 뽑혔다.

50여년간 품어온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완역출간의 꿈을 최근 이룬 신복룡(申福龍,1942년생) 박사. 그는 교수 임용 후 42년간 26권의 저서와 52권의 번역서를 냈다. 논문(121편)과 자료집(8권)을 제외한 단행본 저술만 1년에 평균 1.8권의 속도이다. 건국대 학부 4년 내내 장학생이었던 그는 전체 수석의 성적으로 졸업했다./신복룡 박사 제공

대학 강단에서 내려온지 올해로 10년째이지만 그는 지금도 ‘뒷방 노인’이길 거부한다. 최근 5년에만 <인물로 보는 해방정국의 풍경>(2016년), <한말(韓末) 외국인기록(23권 11책·전면개정판>, <전봉준 평전·4번째 개정판>(이상 2019년)에 이어 올 2월 나관중(羅貫中·1330~1400년 추정)의 <삼국지> 완역본 5권을 냈다.

신간 <삼국지>는 원본의 전문(全文)을 빼거나 더함 없이 온전하게 옮기고 고사성어를 포함한 1100여 개의 주석(註釋)을 달아 국내에 나와있던 400여 종과 구별된다. 그런 그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46~120년 추정)가 쓴 서양 고전(古典)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5권 완역본을 이달 초에 또 발간했다.

2021년 9월1일 나온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신복룡 박사는 “2주일만에 초판 1쇄가 다 팔려 2쇄 인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정가는 권당 2만2000원으로 1~5권 한 세트는 11만원/을유문화사

<영웅전>과 <삼국지>는 각각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1만200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왠만한 청·장년 학자나 작가들보다 더 면려(勉勵)·정진하고 있는 신복룡 박사를 이달 18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작심 50여년 만에 <영웅전>, <삼국지> 완역본

- 정치학자가 왜 <영웅전>과 <삼국지>를 번역했나?

“집이 너무 가난해 중학 졸업 후 고교 학비를 마련하려 1957년 상경해 을지로 6가에서 1년간 낮에는 소금 장사와 가게 종업원으로, 밤에는 다락방에서 <삼국지>를 읽으며 버텼다. 1961년 장학생으로 건국대 입학 후 박시인 교수님의 <플루타크 영웅전(1960년)>을 처음 읽고 완역의 꿈을 가졌다. 조교 시절 박 교수님과 우리말 다듬기를 한 공역(共譯)본을 내기로 ‘약속’했는데, 그분이 세상을 떠나 50년여만에 혼자 출판했다.”

신복룡 박사가 갖고 있는 1960년 정음사 판 <삼국지>/송의달 기자

- 준비는 어떻게 했나?

“교수 생활 중 틈틈이 13종의 영웅전 판본을 수집해 비교해왔다. 2007년부터 번역에 본격 착수해 2012년까지 5년 동안의 석좌교수 시절 학교에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집에선 〈삼국지〉를 번역해 초역을 마쳤다.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 영역본과 홍콩 상무인서국 출판사 출간본을 각각 원문으로 삼았다. 전문가들 조언을 받아 2015년 완역했으나 출판사를 찾는데만 4년이 걸렸다.”

◇“42년간 78권 저술...‘빈둥거림은 죄악’이다”

- 이번 책의 특장이라면?

“신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국내 기존 번역본들이 포함하지 않은 한니발전(傳)과 스키피오전 등 7편을 추가해 총 52명의 영웅을 57편으로 다뤘다. 고전 연구자들이 정본(正本)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자크 아미요(Amyot) 주교(1513∼93년) 판본에 나오는 분절(分節) 번호도 반영해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근거지인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후 이탈리카를 세웠다(위 사진).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로마 정복에 실패한 후 크로토네를 통해 돌아갔다(아래 사진). 신복룡 박사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두 영웅이 누볐던 두 도시는 2200년 전 고대 지중해판 세계대전의 결정적인 순간을 증언한다./게티이미지 코리아

- 지금까지 모두 몇 권의 책을 쓰셨나?

“1979년 대학교수가 된 후 저서 26권, 번역 52권, 논문 121편, 자료집 8권, 서평 31편을 냈다. 저술의 양 보다는 얼마나 긴 생명력과 공적(功績)이 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 42년 동안 78권이면 대단한 다작(多作)이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는가?

“아침 8시쯤 일어나 오전에 신문 읽고 인터넷 등 검색하고, 오후에는 아파트 주위를 4500보 정도 산책한다. 산책을 마친 뒤 책 읽고 글 쓰는 공부를 한다. 밤 11시부터 취침하는 새벽 2시까지가 생산성이 가장 높다.”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평생 책 놓지 않아”

- 우리 나이로 팔순이신데 쉬엄쉬엄 하셔도 되지 않나?

“<삼국지>에서 촉나라 장수 강유는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인생여백구과극·人生如白駒過隙)’고 했다. 그래선지 나는 ‘빈둥거림은 죄악’이라는 신념 속에서 살아왔다. 남은 생애를 무료하게 보낼 수 없고, 당(唐) 태종이 다짐했던 것처럼 ‘내 평생토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리라(수불석권·手不釋卷)<정관정요>’던 내 자신과의 약속과 평소 염원을 지키고자 할 뿐이다.”

'수불석권'을 평생 실천하려 애쓴 당나라 태종 이세민/조선일보DB

◇“술, 담배 모르고 주말 바둑이 유일한 취미”

- 왜 이렇게 학문에 빠져 사시나? 다른 재미나 취미는?

“학문에 빠졌다는 말은 좀 송구스럽다. 내가 아는 것, 할 줄 아는 게 없고 ‘공부가 아니면 내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절박감 속에 살았다. 그리고 공부가 제일 쉬웠다. 운동과 술, 담배를 모르고 주말에 좋은 친구 만나면 가끔 바둑을 두는 게 유일한 취미다. 아마추어 4~5단 정도 된다.”

신 박사는 몇 년 전 ‘신임 교수에게 드리는 권면(勸勉)의 말씀’이라는 글에서 “역사에 남을 한 권의 책을 쓰는 데는 20년이 부족하다. 인생을 길게 보고 각고면려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 2001년 한국정치학회 총회 수상식에서는 젊은 학자들에게 “입시 준비하는 자녀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어서는 안 된다. 돋보기 쓰기 전에 절차탁마하여 일가(一家)를 이루기 바란다”고 연설했는데.

“그렇다. 그 연설은 내 학문 여정의 고백록이며, 하나도 보태거나 숨긴 것이 없다. 시간 강사 생활을 시작한 1970년 이후로 매일 새벽 2시까지 책 읽고 공부하는 생활을 해오고 있다. 연설할 때 나도 환갑의 나이였고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너 잘났다’는 비아냥을 많이 들었다.”

◇“학자는 소명감 갖고, 겸손하고, 자기성찰해야”

독일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사진 왼쪽)는 학자와 정치가의 덕목으로 소명(召命·Beruf)을 강조했다. 그는 1917년 11월 뮌헨대학내 진보적 학생단체인 ‘자유학생연합’ 초청으로 ‘소명으로서의 학문’을, 1919년 1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각각 강연했다. 사진 오른쪽은 <소명으로서의 정치> 책 표지/Weekly Chosun 제공

신 박사는 이어 말했다.

“저는 교수가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교수는 성직(聖職)과 같은 것이어서 저는 강의안을 세 번 복습한 다음 미사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늘 두려웠습니다. 제가 불면과 불안신경증에서 벗어난 것은 정년 퇴직후였습니다.”

- 학자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지금 또 한다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Weber)가 말한 세 가지로 대신하고 싶다. 학자라는 자기 직업에 천직(天職)이란 소명감을 갖고, 수도사에 가까운 겸손함으로 스스로를 다짐하고,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청교도적 자기성찰을 하기 바란다.”

그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게 70대 후반이었고, 최태영 박사가 고구려사(史)를 탈고한 것이 102세였으니 그에 견주면 누구나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傳記 정치학’의 개척자...현장 답사로 저술

한국 정치학계에서 신복룡 박사는 ‘전기(傳記) 정치학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동학 농민 혁명의 지도자인 전봉준(全琫準·1855~1895년)의 삶과 사상, 행적을 1976년부터 4년 여간 3000여km의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추적해 그가 저술한 <전봉준 평전(評傳)>(1981년)은 그 백미(白眉)로 꼽힌다.

동학혁명 생존자 인터뷰와 출생지, 전쟁터, 사망 현장 등 3000여 km를 신복룡 박사가 직접 답사해서 쓴 <전봉준 평전> 사진은 세번째 개정판 표지/교보문고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1999~2000년)과 건국대 대학원장을 지낸 신복룡 박사는 1945~1950년 해방 공간의 정치 인물들을 집중 연구했고 ‘傳記政治學 試論: 그 학문적 정립을 위한 모색’이라는 논문(1998년)도 썼다. 올해 낸 <삼국지>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도 평생 주제인 ‘전기 정치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 인생의 전환점이나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1985년부터 1년 동안 미국 조지타운대학에 유학하면서 2만 페이지의 미국연방문서보관소(NARA) 자료를 열람·복사하며 한국 분단의 이면(裏面)을 확인한 게 큰 전환점이다. 한국 수난의 역사를 얼굴 가득 눈물 흘리며 강의하시던 박형표 교수님, 엄동설한에 홑 문풍지로 된 방에서 글을 쓰시며 학자의 청빈을 보여 주신 김영두 교수님, 학문의 길로 인도해 주신 조재관 교수님 같은 스승님들을 잊을 수 없다.”

◇“좌우명은 ‘공부는 죽어야 끝난다’”

신복룡 박사는 만 35세이던 1977년 10월부터 1979년말까지 매주 월~토요일 6일간 아침 7시5분 KBS라디오의 '아침의 메아리'라는 5분짜리 프로를 진행해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뒤편 산을 산책하면서 이 방송을 매일 듣기 위해 수행 비서로 하여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휴대하도록 했다. 5권의 책으로도 출간됐다./송의달 기자

- 학문적 좌우명이나 원칙이 있다면?

“이수광 선생이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쓴 ‘공부는 죽어야 끝난다’(學者沒身已矣)와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Descartes)가 한 말 곧, ‘인생을 절약하십시오’라는 경귀이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들은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문득 땅에서 솟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희로애락에 따라 울고 웃었다. 다른 점이라면 우리 보다 더 많이 책을 읽었고, 시운(時運)이 따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세상에는 배신과 음모를 일삼는 추악한 자들이 많고, 누구든지 일생 동안 ‘나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카이사르를 살해한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인 브루투스(Marcus Brutus)도 신복룡 박사가 완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온다. 그림은 화가 에두아르도 로잘레스(Eduardo Rosales)의 '루크레티아의 죽음’. 자결한 여인 옆으로 칼을 치켜들고 복수를 맹세하는 이는 브루투스의 먼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조선일보DB

◇“우국심으로 ‘고결한 삶’ 산 52명의 영웅들”

- 영웅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

“그들은 명예와 사랑·충직·경건·열정·충성심·청렴·검소·우정·신의 같은 덕목으로 ‘고결한(noble)’ 삶을 살았다. 또 충만한 ‘우국심(憂國心)’으로 역사가 부르는 순간에 옳은 행동을 한 전쟁 영웅과 정치가라는 게 공통점이다. <영웅전>을 읽고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이 꿈과 야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신 박사는 “이들 52명 가운데 정적(政敵)의 손에 죽은 사람이 18명, 자살한 사람 8명, 전사(戰死)자 4명인 반면, 자연사(自然死)한 사람은 9명 뿐이라는 사실은 전쟁과 정치의 격동성 그리고 영걸(英傑) 인생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2021년 2월말 신복룡 박사가 완역본으로 낸 <삼국지>. 1~5권에 총 1100여개의 주석을 달았고 원본에 충실하다./집문당

- 동서양의 대표 영웅전들을 완역했는데, 동서양 영웅에게 차이점이 있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J. 슘페터의 말처럼, 인간의 욕심과 야만·비겁·사악함 등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고, 5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본다. 세상에선 착한 사람이 꼭 이기는 게 아니다. 따라서 ‘착하게’ 보다는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진짜 지혜로운 고수(高手)는 세상의 암수(暗數)를 이겨내는 사람이다.”

◇“지금 정권은 私利 챙기는 ‘빨대 정권’이다”

- 이런 관점에서 해방 이후 한국 정치를 평가한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진정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려는 ‘공공의식’이 너무 부족하다. 정치 참여와 공적 활동을 명예욕과 과시, 호강, 심지어 생계 수단으로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특히 지금 정권은 영달(榮達)과 사리(私利) 챙기기에 급급한 ‘빨대 정권’이다. 과거 좌우파 정권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왼쪽 사진)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의 공사현장을 시찰하며 지시하는 모습. (오른쪽 위)1962년 김포에서 모내기를 한 후 동네 어른에게 두 손으로 막걸리를 따르는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 아래)사진 찍기를 즐겼던 박정희 대통령이 즉석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부인 육영수 여사에게 보여주고 있다./조선일보DB

◇“박정희는 조국에 신명을 바친 유일한 정치가”

- 한국 정치인 가운데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명(身命)을 바친 정치가는 박정희 밖에 없다고 본다. 말년의 흠결만 없다면 검소하고 청렴했던 이승만 대통령도 그렇다.”

- 앞으로 계획은?

“한글 성경(聖經)에 우리 말이 아니거나 표현, 문법이 틀렸거나 오역한 부분이 많다. 원고지 1만 6000장 분량을 다섯 번 고쳤는데 더 보완해 전자책(e-Book) 형태로 공급하고자 한다.”

1913년 창업해 지금도 성업 중인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 쇼텐' 로고/이와나미쇼텐 홈페이지

- 후학들에게 충언한다면?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양명(王陽明)이 마지막으로 한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학자들이 공부를 안 한 탓이다(天下不治 學文不立)’이다. SCI 논문 같은 1~2년짜리 단기 과제에만 매달리지 말고 10~20년 들여 오래 읽힐 명저(名著)를 내는 세계적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린다.”

◇“日 지식인들의 ‘장인 정신’ 우리도 배워야”

- 일제 시대에 태어나셨는데, 아직도 일본에 배울 점이 있는가?

“그렇다. 특히 한 분야에 자기 인생을 거는 장인(匠人)정신으로 충만한 학자와 연구자·언론인들이 많고, 사회 전체가 지적(知的) 활동과 지식·정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를 배워야 한다. 1913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출판사를 창업한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가 1946년 세상을 뜨자, 일본 왕은 출판계 최초로 문화대훈장을 수여했다. 은행 직원들은 이와나미쇼텐 발행 수표를 들고 간 저자들을 기립응대했다. 일본 청년들은 2차 세계대전 병영에서도 ‘이와나미문고’ 책을 군복 윗주머니에 넣고 잠들었다.”

신복룡 박사의 고향인 충북 괴산군 화양동계곡에는 송시열의 후학들이 만든 명나라 황제 사당인 '만동묘(萬東廟)'가 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과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구원군을 보낸 신종에게 제사 지냈다. 돌 계단의 경사 각도는 75도에 이른다./박종인 선임기자 제공

- 고향이 송시열의 화양동 서원이 있는 충북 괴산인데, 중국을 어떻게 봐야하나?

“중국은 절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을 받드는’ 전(前)근대적 습성이 일부 한국 정치인들의 골수에 박혀 있다.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 계단의 경사는 75º이다. 바로 서서 올라가다가는 추락해 즉사한다. ‘중국의 천자를 뵈러 가는데 개처럼 기어서 올라가라’는 뜻이다. 리훙장(李鴻章)과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압박하던 19세기 말 한반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내년 3월 한국 대통령 선거도 지금 투표한다면, 미국이 아닌 중국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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