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김보통 작가 "탈영병 출신이 해코지할까봐 훑는 버릇 있었다"

임지영 기자 2021. 9. 2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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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하나의 ‘현상’이 되고 있다. 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의 활동을 통해 군내 폭력과 가혹행위 등을 다룬 이 드라마의 원작은 만화〈D.P-개의 날〉이다. 이번 드라마 각본에도 참여했던 김보통 작가가 2015년 〈한겨레〉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연재 당시 김보통 작가를 인터뷰했다. 군무이탈 체포조였다가 제대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군대가 남긴 ‘강박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최근 김 작가는 자신의 SNS에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라고 적었다. 당시의 인터뷰를 다시 공개하는 이유도 이와 닿아있다. 작품의 배경이 된 '작가의 21년 전 경험'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는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를 경험했던 김보통 작가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다. ⓒ넷플릭스 제공

전화나 문자 오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통화 시간이 1분을 넘어가면 괴롭다. 진동도 안 느껴지도록 무음으로 해놓는다. 15년 전 제대 후 생긴 습관이다. 군대에서 탈영병 잡는 군인으로 있던 김보통 작가는 전화기에 강박증이 있었다. 문자나 전화로 탈영병의 위치나 소식이 들어왔다. 그 순간을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몰랐다. 잘 때는 핸드폰을 이마 위에 올려놓거나 속옷 안에 넣었다. 이런 생활을 1년 넘게 하니까 막판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왔다.

최근 그(위 사진)가 〈한겨레〉와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에 동시 연재 중인 만화 〈D.P-개의 날〉은 15년 전 작가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했다. 탈영병을 잡는 군인인 육군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조 DP의 이야기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얘기였다. 지금은 전화에 대한 강박만 남아 있지만 예전 버릇 중 하나가 지나가면서 모든 사람을 훑는 것이었다. 한 번은 내가 쫓는 탈영병이 있을까 봐, 두 번째는 잡아넣었던 탈영병 출신이 내게 해코지할까 봐.” 50세 가까이 된 고종사촌 형도 DP 출신인데 아직도 출퇴근길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철렁한다고 한다. ‘그들’과 마주칠까 봐서다.

만화 속 탈영병의 모습은 다양하다.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공통점은 있다. 실제 그가 마주했던 탈영병 중에는 부잣집 자식이 한 명도 없었다. 집안이 좋으면 입대하지 않거나 좋은 보직에 갔다. 사단 사령부의 목욕탕 관리병, 육군 본부의 피엑스 담당 같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와 굉장히 유사한 모습으로 탈영병 문제가 나타난다. 한부모 가정,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지능이 좀 떨어지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많았다. 별거 아닌 일로도 탈영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만화 이야기보다 군대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만큼 인상적인 경험이 많았다. DP 중에는 부잣집 출신이 많다. 길게는 열흘 넘게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잠도 자고 밥도 먹어야 했다. 활동비가 턱없이 부족해 후원이 필요하다. 작가의 집은 잘사는 편이 아니었다. 탐문 들어간 식당에서 구구절절 설명하며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잠은 학교 도서관 같은 곳에서 잤다. 하루라도 빨리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악독하게 잡았다. 전국에서 가장 탈영병을 많이 체포해 표창을 받기도 했다. 다른 부대에서 과외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가 일러준 팁은 하나. ‘가난한 애’를 뽑으라는 것이다. 아직 안 나왔지만 극중 인물 안준호도 비슷한 배경이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그가 심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는지 보여줄 예정이다.

만화를 그린 지 이제 2년. 직장생활을 하다가 회사원의 삶에 환멸을 느껴 그만두었다. 무언가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수천 개의 나사 중 하나가 되는 일이다. 처음부터 만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언론사 인턴 공고도 눈여겨봤다. 우연히 만화를 만났다. 웹툰 플랫폼이 막 생겨날 때다. 당시만 해도 진입 장벽이 낮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운이 좋은 편이다. ‘올레마켓’에 청년 암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데뷔작〈아만자〉를 올렸다. 무거운 주제를 위트 있게 그려 인기를 얻었다. 일본에서도 연재 중이다. 지난해 국무총리에게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으러 가던 날 어머니가 당부했다. 할 만큼 했으니 다시 직장을 잡으면 좋겠다고. 돈을 벌라는 의미였다. 만화계의 현실이다. 〈한겨레〉에 연재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니다. 어른들에게는 신문이 최고다. 등산 모임에 가져가기도 좋다. 그는 트위터에서 책이나 작품 홍보에 적극적이다. “알리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온갖 것에 불만이 너무 많았다. 나쁘게 말하면 불만이고 좋게 말하면 문제의식이다. “세상을 발전시켜나가는 건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이다. 나도 불만이 많은데 직접적으로 하면 갈등이 생기니까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나가면 어떨까 싶었다.” 당장의 소망은 〈아만자〉로 떼돈을 벌어 은퇴하는 것. 불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슬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쟁여놓아 당분간 은퇴는 어려울 것 같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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