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조원선의 제주

서울문화사 2021. 9. 2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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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BGM, 라디오로 그렇게나 많이 들었던 감성 어린 목소리.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이 노래를 짓듯 머물 곳을 지었다. 앞마당에 뾰족뾰족 선인장이 자라는 제주 월령의 바닷가 마을에.


창가를 향한 의자의 배치, 빈티지 조명의 밝기와 오디오의 음색까지 하나하나 고려하며 준비한 스테이 ‘일렁이는’.

그때 롤러코스터, 얼마나 신선했나. 베이시스트 지누와 기타리스트 이상순, 그리고 보컬 조원선. 세 사람의 트라이앵글에는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탄탄한 실력에 기반한 하모니라 인디 같으면서 ‘인싸’였고, 대세에 휘둘리지 않는 개성과 자유로움이 넘실댔다. 보컬 조원선의 목소리는 포근하나 묘한 각을 세우고, 독특한 서정성과 모던함으로 크게 인기를 모았다. 그 노래는 지금 들어도 청춘이다. 어느 순간 주류가 되었지만 그것을 좇지 않고, 자의식이나 작가의식에 매이지도 않는 당당한 팀. 롤러코스트는 이미 20년 전 세련돼 있었다. 그러니 지금 들어도 노래가 촌스럽지 않다. 억지가 없어서. 자의식으로 똘똘 뭉치지 않아서…. 그래서 그들은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도 어느 순간 각자의 삶으로 나아갔다. 뜻밖에 조원선은 제주 바다 앞에 펜션을 지어 작은 세계, 따스한 공간을 만들었다. 저녁노을도 일렁이고 바다도 일렁이고, 선인장이 빼곡한 그 너머로 자연이 일렁이는 곳. 제주 중에서도 유달리 신비한 이 공간은 그녀를 닮은 것만 같다.

‘다시 두근두근’, 백은하 作.


저의 음악처럼, 이 공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중적이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딱 이게 좋은 사람들만 와줘서, 같은 마음으로 보고 즐기고 쉬다 가시면 좋겠어요.


제주에 살며 꽃 그림과 사진 작업을 하는 백은하 작가와 음악을 사랑하는 호기심 많은 뮤지션 조원선. 동갑내기 아티스트가 만났다.


바다를 향해 창이 난 자쿠지 공간. 작은 정원 너머로 하늘, 바다까지 감상할 수 있다.


백은하 작가가 ‘일렁이는’의 오픈을 축하하며 제주 바다의 바람에도 잘 자랄 맨드라미 모종을 선물했다.


2개의 방, 그리고 거실과 통하는 주방, 욕실, 자쿠지 공간으로 이루어진 일렁이는 객실 A. 대형 아일랜드는 일산에 위치한 목공방에 의뢰해 주문 제작했다.


‘인생의 새 악보를 쓰는 원더우먼’, 백은하 作.


바닥을 공사하면서 나온 몽돌을 모아 입구 아래쪽을 장식했다.

뉴멕시코의 산타페 같아요. 집 색깔부터 심플하면서 아담한 외관이 이 선인장 마을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네요. 디테일에서 정성이 보여요. 열심히 만들었지만 강박적이지 않아 좋고요. 이곳을 만드는 게 꼭 노래하는 것 같았어요. 노래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느낌을 추가했는데, 그 다름을 알아봐 주면 좋거든요. 작가님께서 공간에 대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또 너무 좋은 거예요. 침실의 조명이 어땠다, 스위치가 예쁘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면 그간의 모든 노고가 싹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이런 건 모르겠지, 하면서 어떤 파트를 고쳤는데 딱 그 부분이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너무 신기해서 소름이 끼치고 그랬어요. 음악을 듣는 건 본인이 좋아해서 혼자 듣는, 개인적인 취향인데 말이에요. 작가님이 하시는 그림 작업도 그렇겠지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이 있지만 좀 다르게 표현해봤는데,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반갑죠. 네. 맞아요! 결이 비슷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면 가사를 적을 때 ‘발음하기 불편해도 이 말을 꼭 넣어야지’ 했는데 그것 때문에 좋다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내가 이래서 노래를 만드는구나, 이 공간을 만드는구나, 생각해요.

인테리어 구상부터 가구, 소품의 스타일링까지 직접 하셨어요? 이 공간과 다 잘 어울려요. 본채랑 별채가 있는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기본 뼈대만 남기고 전부 다 새로 만들었어요. 가구는 공방에 주문 제작하고, 소품들은 온라인 검색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맘에 드는 건 찜을 해놨는데, 찜한 물건이 1000개가 넘어서 나중엔 다 찾을 수도 없더라고요. 그때부턴 꼭 사야 할 것 같은 물건만 장바구니로 보냈죠. 밤에 자려고 누워서도 쇼핑 창을 계속 봤는데, 깜박 졸다 얼굴에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적이 얼마나 많은지(웃음).

제주도에 스테이를 만드신 게 뜻밖이었어요. 전부터 꿈이 있었나 봐요? 30대 초반 즈음, 막연하게 작은 방이 몇 개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정말 조그맣게 식당이나 카페도 같이 있어서 너무 고되지 않게요. 나중에 나이 들면 그렇게 살아도 적성에 맞고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좀 잊고 살았어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양평 쪽에 펜션을 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주도에 살던 친구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어요. 사실 처음부터 제주에 반했던 건 아니었어요. 친구 때문에 자주 오긴 해도 마음을 안 줬던 이유가, 저는 제주의 바람이 너무 힘들었어요. 가을, 겨울에 특히.

그죠? 제주는 겨울에 눈이 세로로 내리는 게 아니라, 옆에서 가로로 막 오잖아요. 바람 때문에. 그래서 살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제주가 좋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3주 정도 제주에서 지내다가 일주일은 서울에 올라가서 지냈는데 교통이 혼잡한 강변북로랑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면 얼른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럴 때 내가 제주도 사람이 됐나, 싶었어요.

꿈을 평생 가지고 있기만 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실행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롤러코스터로 활동을 하고 나서 솔로 정규 앨범은 2009년에 한 장 냈어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고, 건강이 안 좋았어요. 몸이 더 안 좋아질까 두려워서 무리하지 않으려 했고, 한동안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렇게 10년이 흘렀어요. 일부러 소속사 없이 지내다가 3년 전 기획사를 찾고 싱글 음반을 두 번 냈는데, 공연을 준비하려다가 또 건강이 악화돼 1년 정도 쉬게 됐고요. 그때 참 막막했어요.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고 싶은데 몸은 안 좋고, 시간은 애매하게 그냥 흐르고,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공연도 취소되는데 나는 이제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어떤 일을 해야 몰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친구랑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게 되셨는데, 이전에 롤러코스터와 함께했던 시간도 참 행복하셨죠? 세 분의 합이 멋졌어요. 마지막 앨범이 된, 저희 다섯 번째 음반이 <트라이앵글>이었어요. 정말 저희 셋은 조화를 이루는 삼각형이었나 봐요. 그땐 몰랐지만, 비슷한 셋이 우연히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어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음반을 내면서 많이 배우고 많은 작업을 했는데, 그걸 또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객실 한쪽에는 조원선이 직접 모은 책들도 함께 있다. 그녀가 다니는 제주의 단골 서점은 한림읍에 위치한 ‘책방 소리소문’.


8월 첫 주, 정식 오픈을 앞두고 마지막 단장에 바빴던 조원선을 만났다.


뮤지션의 공간에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작은 의자와 함께 블루투스 스피커를 배치했다.

그 다섯 장의 앨범이 대중에게도 큰 선물이었죠. 그 당시에 정말 무엇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셨고요. 롤러코스터의 시작은 어땠어요? 밴드를 결성하고 저희끼리 음악 작업을 했는데, 앨범을 내려고 제작사를 알아보는 데만 2~3년이 걸렸어요. 다들 지쳤지만 작업한 게 아까우니까 앨범 하나만 내고 해체하자는 얘기를 했었고요. 그러다 저희를 계속 지켜보던 분이 안타까워하시며 1집을 발매해주셨는데, 홍보도 제대로 못하고 사라지는 듯했죠. 이제 그만하자고, 저는 그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뉴욕으로 유학을 떠날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유희열 씨가 저희 노래가 계속 라디오 신청곡으로 들어온다는 거예요. 앨범 하나 더 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때는 이미 마음이 닫혀서 신청곡이 들어오든 말든 다 필요 없다, 음악을 안 할 거라고 했죠. 근데 라디오 출연 요청이 들어와서 나갔는데, 반응이 괜찮은 거예요. 그때 2~3년 동안 서러웠던 게 약간 좀 가셔서…(웃음).

한 장만 내려다가 앨범을 네 장 더 내게 되었군요! 갑자기 여기저기서 2집 앨범을 만들자고 연락이 온 거죠. 그러다가 그냥 쭉 하게 됐어요. 이미 작업을 해둔 게 많아서 이것도 저것도 녹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거든요.

롤러코스터는 자기 스타일대로 음악을 하는 용기 있는 밴드였어요. 지금 들어도 세련되잖아요. 음악적 영향을 어디서 많이 받으셨어요? 제가 스물세 살 무렵 일본에서 잠깐 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새로운 음악을 접할 기회가 완전히 열렸어요. 당시엔 세계의 모든 음반이 일본에 다 모여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방대한 음악의 세계가 거기 있더라고요. CD가 너무 비싸니까 렌털 숍을 이용했어요. 1박에 200엔, 2박에 300엔 하는 CD를 몇 장씩 빌려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정말 좋아하는 음반은 테이프를 사면서요. 내가 일본에서 이럴 때가 아니라 빨리 서울로 돌아가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돌아왔죠. 솔로 음반을 내려고 데모 테이프를 들고 돌아다니는데, 그때는 기획사 사장님들이 진짜 그랬어요.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는 묻지도 않고 “춤 잘 춰? 키는 몇이야? 한 바퀴 돌아봐” 이러면 저는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죠. 그랬던 기획사에서 연락이 오면 “저는 할 얘기가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속상한 일이 계속 있으니, 내가 하고 싶었던 팀을 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롤러코스터를 신나게 타고 어느 순간 다 왔다! 하는 것처럼 찬란하게 5~6년을 보내며 다섯 장의 앨범을 만드셨는데. 롤러코스터는 해체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끝낼 준비를 따로 했던 건 아니지만,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상순 씨가 유학을 가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게 됐어요. 무언가 억지스럽게 마무리 짓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이대로 ‘그때 참 좋았다’라고 남기는 게 맞지 않을까!

그 후 솔로 활동은 어떠셨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였을 것 같아요. 모든 결정을 계속 혼자 해야 하니까 고독하고, 겁도 났어요. 전에는 다 같이 장난하고 농담도 하면서 결정하곤 했었는데! 그리고 기타 연주가 사람 목소리나 말투 같아요. 제가 오랜 시간 이상순 씨 기타에 익숙해져서 다른 기타 소리에 맞춰 공연을 하는 게 힘든 거예요. 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서 노래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요. 처음엔 그 점이 제일 힘들어서 첫 앨범은 이상순 씨와 함께했고, 그 뒤로 한참 후에야 자유로워졌어요.

힘든 시간을 지나, 이제 자유로워졌다! 싶었던 때를 표현한 노래가 있나요? ‘보낸다’라는 곡을 제일 좋아해요. 노래 내용은 그냥 어떤 사랑하는 관계와의 내용인데. 롤러코스터를 떠나보낸다는 건 아니고 참 고마웠다, 재밌게 잘했다! 그 정도의 마음이에요.

인디 같기도 하고, 대중적이기도 하고, 그 사이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기도 해서 원선 씨의 음악이 매력적이에요. 저의 음악 같은 종류를 많이 듣는 분들은 제가 주류라고 여기고, 대중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제가 인디라고 생각하겠죠. 이 공간도 딱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 와서 같은 마음으로 보고, 즐기고 쉬다 가시면 좋겠어요.

‘일렁이는’이라니, 스테이 이름이 독특해요. 어떻게 지으셨어요? 여기 와보니까 밖에 노을도 바다도 일렁거리는데… 일렁이는! 하고 형용사로 끝나는 게 좋더라고요. 사람들이 명사도 동사도 아니고 이상하대서 일렁이다, 일렁일렁 해봤는데….

그 맛이 사라지는데요? ‘일렁이는’이 꼭 맞는 것 같아요. 계속 일렁이고 있다는 진행형이고, 어감도 좋아요. 일렁이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앞으로 이 공간과 음악은 어떻게 같이 가게 될까요? ‘음악은 한동안 못할 것 같다’ 또는 ‘꼭 병행할 거다’, 이런 생각은 둘 다 아니에요.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데 좀 많이 몰두하는 성격이라 당분간 앨범을 내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또 좋을 것 같아요!

투숙객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작은 소품까지 신경 쓴 흔적이 느껴진다.


“취침 등이 필요할까요? 전신 거울을 두는 게 좋을까요?” 스테이 사장님은 처음이라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새 나답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렁이는’을 적은 캘리그래피 위에 말린 꽃잎을 붙여보는 시간.


3월부터 시작해 4개월 동안 이곳을 꾸미기 위해 바삐 움직여온 그녀의 손. 손목에 새긴 타투 문구는 ‘Butterfly in my stomach’.


‘도레미파솔라시도’, 백은하 作.


노래를 짓듯 집을 지었다. 선인장과 바다와 노을이 일렁이는 이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에도 조원선은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고, 목소리는 저 선인장 가시처럼, 앞마당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처럼 섬세하겠지만 내면의 다정함은 여전할 것 같다. 속도감 있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온 그녀가 일렁이는 제주에서 건져내는 음악은 어떤 것이 될까? 노을이 담길까? 선인장이 담길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까? 이 공간에 일렁이는 이야기들은 또 어떤 노래가 되어 나올까?


기획 : 김의미 기자  |   글·콜라주 사진  : 백은하  |   사진 : 이지아  |   촬영협조 : 일렁이는(blog.naver.com/ilin_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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