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도입하면 은행산업에 위기가 올까
[경향신문]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 도입을 위해 관련 연구와 실험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CBDC는 말 그대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로, 현금없는 경제가 현실화하면서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CBDC가 도입될 경우, 전통적으로 자금중개 기능을 맡아온 은행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어 향후 은행업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린다.
20일 한국금융연구원 등의 자료를 보면 CBDC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은 현재 시범사업을 진행 중에 있고, 한국도 올 하반기부터 CBDC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의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DC가 도입된다면 현금 수요가 급격히 축소되어 실물 명목화폐가 사라질 상황에 처한 국가의 경우, 중앙은행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한 편리하고 안전한 새로운 디지털 지급결제 수단이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특히 CBDC가 도입되면 은행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고, 중앙은행이 직접 대출을 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모든 경제주체가 중앙은행에 CBDC 계좌를 보유하게 되므로 화폐 유통단계에서 은행의 입지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CBDC가 은행예금을 대체하게 될 수 있어서다. 극단적인 경우 대규모의 은행 예금이 CBDC 계좌로 이체될 경우 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아직 법률적 검토 단계에 있지만 중앙은행이 CBDC에 이자를 지급하기로 결정할 경우 은행에서의 자금이탈이 더 가속화할 수도 있다. 한국은행이 외부 연구용역을 통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CBDC에 양 또는 음의 이자를 부과하더라도, 이것을 일반적인 의미의 이자 지급으로 볼 것은 아니며 엄밀히 보면 통화량의 변경에 가깝다”고 밝혔다. CBDC에 대한 이자 지급이 통화정책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들이 이같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아, 은행산업 자체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기존 메커니즘과 유사하게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CBDC를 공급하고, 다시 민간은행이 일반 경제주체에 CBDC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2단계 체제를 통하는 구조”라며 “각국 중앙은행이 예상되는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 초기 CBDC의 보유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보완책을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CBDC 도입이라는 큰 변화를 앞둔 은행들이 경쟁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는 “CBDC 도입은 은행의 금융중개기능 약화를 초래할 수도 있으나 은행의 서비스 범위 확대 및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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