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면 달라지나요?..외교관계 '네이밍'의 세계 [한반도 줌인]

김유진 기자 2021. 9. 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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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후 한미 단독 정상회담과 소인수회담, 확대회담 등을 연속으로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워싱턴/강윤중 기자


“한국과 몽골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습니다.”(10일 문재인 대통령, 한·몽골 화상 정상회담)

“수교 60주년을 맞아 향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서의 관계 설정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1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 한-호주 외교·국방(2+2) 장관회의 공동기자회견)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더 높은 단계로 발전되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15일 문 대통령, 왕이 중국 외교부장 접견)

연인이나 혹은 친한 친구 사이라면 종종 ‘특별한’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듯이, 국가 대 국가의 사귐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외교관계에서도 호명은 관계를 규정하고, 또 일정한 방향성을 내포한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의 ‘린치핀’, 미일동맹은 ‘코너스톤’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사실 양국 관계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는 실질적 내용보다는 외교적 수사에 가까울 때도 많다. 지난 10~15일 간 한국이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과의 협의 자리에서 쏟아진 ‘전략적’ ‘포괄적’ ‘협력’ ‘동반자’ 등의 단어는 어느 쪽일까.

■같기도 ‘○○○ 동반자 관계’

2021년 9월 현재 한국이 정식으로 수교한 나라는 191개국. 모든 국가에 수식어가 붙어있지는 않다. 그중에서도 우호관계가 각별하거나 또는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온 나라들에 한해서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론보도 등에 기초해 정리해 본 대표적인 외교관계 명칭과 소속 국가는 다음과 같다. △포괄적 전략적 동맹관계(1개국): 미국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중국, 러시아, 베트남, 콜롬비아 등 △포괄적 녹색 전략적 동반자 관계: 덴마크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4개국): 인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우즈베키스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스페인, 오스트리아, 카자흐스탄 등 △포괄적 동반자 관계: 프랑스, 브라질 등

이 중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맺고 있는 동반자 관계와는 단연 차이가 있다. 전략적 동반자와 포괄적 동반자 관계는 어떨까. 지금까지는 ‘전략적’이란 단어는 경제, 정치 등 다방면에서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포괄적’은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나라라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해석이 통용되고 있다. 물론 둘 사이에 공통분모가 더 많다는 반론도 있다.

정부도 똑부러지는 설명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또 각종 ‘동반자 관계’ 현황에 대한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각각의 명칭에 위계나 서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국으로부터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내부적으로 현황을 꾸준히 파악하고 있지만 대외적으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계 격상’ 러브콜 받는 한국

정부는 최소 5~6개에 이르는 ‘○○○ 동반자 관계’에 정해진 위계가 없다지만, ‘관계를 격상한다’는 발표는 이달 몽골, 호주와의 사례에서처럼 자주 등장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닐까.

관련 논의에 밝은 정부 당국자는 “‘횡단’ 이 아닌 ‘시계열’ 관점으로 봐 달라”고 했다. 일정 기간에 걸쳐 한 나라와의 관계 설정이 변화한 추이를 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시계열), 한 시점에서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 설정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횡단).

내년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 변천사를 보면 이해가 쉽다. 1992년 수교 당시에는 ‘우호협력관계’ 였는데, 1998년 ‘협력 동반자 관계’,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격상됐다.

양국 관계 ‘격상’ 결정은 통상 정상 방문이나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되곤 한다. 이는 양국이 높은 수준에서 합의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고 명쾌한 이유가 있다. “정상 방문 결과로 만들기에 이것(관계 격상)만큼 용이한 성과 사업도 없기 때문” “언론에서도 관계를 한 단계 높였다고 하면 주목하지 않나”라는 복수의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 설득력있다.

최근에는 우리 측보다 상대국의 요청에 따라 관계 격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달라진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 당시만 해도 “미국과는 ‘21세기 국제환경에 부응하는 전략동맹’, 일본과는 ‘미래지향적 성숙한 동반자 관계’, 중국·러시아와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등 주변 4국과 모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강조했다.

2008년 12월 외교통상부가 발간한 ‘주변4국 정상외교 성과’ 중에서 관계 업그레이드를 다루는 부분.

■이름에 불과해도 이름의 무게는 있다?

국가 간 우호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반자에서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한다고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상대국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협력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상 행사 등 외교 계기마다 관계 격상이 관행처럼 이뤄지는 것은 신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소수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한 중견 외교관은 “한국 외교 전략의 우선순위 측면에서라도 때로는 절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이 처한 외교 현실에서 수십개 국가와 동시 다발적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하느냐는 문제제기로 들린다.

고위 외교관은 “전략적 관계를 제대로 하려면 전략대화 협의체 가동 등 제도적 후속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한정된 외교 인프라와 자원으로 모든 나라들과 이를 운용할 역량이 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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