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가온 숙제 '더 로드'"..김혜은, 대체불가 차서영 [인터뷰 종합]
[OSEN=장우영 기자] 배우 김혜은이 ‘더 로드 : 1의 비극’을 통해 다시 한번 ‘김혜은’이라는 이름값을 증명했다.
김혜은은 지난 9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더 로드 : 1의 비극’(극본 윤희정, 연출 김노원,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더 그레이트 쇼)에서 차서영 역을 맡아 묵직한 열연으로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더 로드:1의 비극(이하 더로드)’은 폭우가 쏟아지던 밤 참혹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침묵과 회피, 실타래처럼 얽힌 비밀이 기어코 또 다른 비극을 낳는 스토리를 그리는 미스터리 드라마다. 지난달 4일 첫 방송된 ‘더 로드’는 최고 시청률 4.0%(2회, 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김혜은은 ‘더 로드’에서 차서영으로 분해 극 몰입을 끌어올리는 열연을 펼치며 ‘믿보혜은’ 저력을 입증했다. 보도국 소속 아나운서 차서영은 욕망에 솔직한 인물로,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모든 게 화려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하다. 또한 직업, 학벌, 스펙, 미모, 완벽한 가정까지 남들이 선망하는 모든 걸 가졌음에도 늘 허기진 인물이다.
김혜은은 절제된 감정 연기와 눈빛만으로 서사를 전달했고, 폭발적인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며 ‘역시 김혜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캐릭터의 감정 변주를 탁월하게 그려낸 김혜은은 한계 없는 스펙트럼으로 대체 불가 존재감을 보였다.
‘더 로드’가 종영한 가운데 김혜은은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왔던 작품이라서 아직까지 여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끝났는데도 되돌려보기를 하면서 제 연기가 부족하고, 여전히 작품 중인 것 같이 느껴진다. 11부를 봤다가 3부를 봤다가 하면서 ‘왜 연기를 저렇게 했지’ 이러면서 아직까지 보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우리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먼저 김혜은은 ‘더 로드’ 원작 소설인 ‘1의 비극’에 대해 “보지 말라고 하셔서 일부러 보지 않았다. 캐릭터를 보고 나면 대본에 나오는 캐릭터는 변주가 됐기 때문에 원작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기준이 없으면 더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는데, 기준점이 생기면 비교를 하게 된다. 비교하는데 에너지를 쓰는 게 아깝더라”고 말했다.
이어 “차서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을 더 주고 싶었기 때문에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던 것 같고, 드라마가 끝나고 읽을 생각이었는데 다음 드라마를 준비 중이라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대충은 봐서 흐름은 알고 있다. 더 처참한 내용인데 차서영을 그렇게까지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 더 참혹하고 서늘하고 싶지 않아서 소재를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혜은은 “우리의 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야기지만 목적이 다르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에 ‘지금도 안보고 하길 잘했다. 보고 했으면 내 상상력의 울타리를 스스로 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이야기했다.
▲ “성공 욕심은 없지만 ‘캐릭터’ 성공 욕심은 있어요.”
김혜은은 차서영에 대해 “사실 너무 힘들었다”며 “이 여자를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 ‘이런 여자가 세상에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연기를 하는 배우가 캐릭터를 잘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 속에 차서영을 담느라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고, 그 일이 제 연기를 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학대받다가 죽은 아이가 만약 목숨을 부지해 잘 살았다 하더라도 바르고 중심을 갖춘 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성공을 지향했거나, 그 성공도 균형 잡힌 것이 아니라 그냥 인정받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학대를 받았다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차서영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이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정말 불쌍한 여자다. 모든 게 도구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제가 한 영혼을 두고 상상을 해 봤다. 아이가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살았다면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성공이지 않았을까. 학벌, 좋은 직장,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앵커의 자리라면 학대당하고 자존감이 낮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게, 어쩌면 너무 갑자기 다 이해가 되더라. 그런 아이라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뭐든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혜은은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값진 사람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 모르고 자랐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를 무엇으로 찾을지 생각하니까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처음에는 이해가기 힘들었는데 아이가 자라온 과정을 상상하면서 어른이 된 차서영, 아이 차서영을 연결해 보니까 이해가 됐다”고 덧붙였다.
특히 김혜은은 “웹툰 원작이 아니라 외적인 부분에서는 싱크로율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꾸 접점을 찾고 내 몸으로 내 마음을 다 담아서 차서영을 찾아내야 되고, 찾아낸 차서영을 연기 해야하기 때문에 내 안의 것을 끌어내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다. 어떤 걸 끌어냈냐면 내가 열심히 살아서 뭔가를 이루고자하는 과정에서 내가 차서영 같은 면은 없었는가 돌이켜 보게 되더라”며 “억지로 다 꺼내 모아 내 안의 차서영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후로는 눈물이 굉장히 많이 났다”고 이야기했다.
김혜은은 “딸을 낳고 돌이 지나자마자 배우로 데뷔했다. 진짜 멋있다라고 할 수 있지만, 쟤는 성공에 미쳤다라고 할 수도 있다. 목표를 이룰 때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자기 목표를 이룬 사람을 일에 미친 사람이나 밸런스가 안 잡힌 추한 성공이라고 한다. 이타적인 성공을 멋진 성공이라 생각한다. 모두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성공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하지만 차서영은 이기적으로 이루는 것들이 많다. 차서영을 나쁜 여자라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성공하고 싶은 과정에서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내 안에서 뭐가 나쁜 성공이고 좋은 성공인지를 찾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김혜은은 “성공 욕심은 없지만 ‘캐릭터’ 성공 욕심은 있다. 차서영은 상을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저는 말이 되게 창피하지 않게 연기를 잘하고 싶은 거고, 차서영은 상이 목적인 거다. 그래서 저는 차서영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지진희→윤세아, ‘더 로드’엔 긍정적인 배우들만 모였다”
김혜은은 ‘더 로드’에서 지진희, 윤세아 등과 호흡을 맞췄다. 극이 주는 긴장감과 텐션이 높아 부딪힐 때마다 명장면이 나왔고, 이들의 호흡에 시청자들도 열광했다.
김혜은은 “배우들의 성품이 좋았다. 다들 불평불만이 없었다. 우리 작품 모든 배우들이 긍정적인 배우들만 모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긍정 에너지가 생기기 쉬운 작품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각자 본인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그게 큰 에너지가 됐고, 멋있는 분들 앞에서 저도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했다”고 이야기했다.
▲ “‘더 로드’의 동성애, 철저하게 그렇게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것”
충격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더 로드’에서 차서영은 보도국장 권여진(백지원)과 내연 관계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동성애 코드가 담겼기에 조심스러울 수도 있었던 상황.
김혜은은 이 장면에 대해 “동성애가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작품에서는 그렇게 그려져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저희 드라마에서의 동성애는 철저하게 그렇게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차서영의 캐릭터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이 없죠. 자기가 원하는 것만 이루면 되니까”라고 덧붙였다.
▲ “‘더 로드’, 운명적으로 다가온 숙제”
전작 ‘우아한 친구들’ 강경자에서 ‘더 로드’ 차서영으로. 각기 다른 매력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면서 김혜은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시청자들은 ‘역시 김혜은’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혜은은 “‘우아한 친구들’ 강경자는 그냥 멋있는 캐릭터였다. 다른 누가 했어도 박수 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나는 생각하고, 내가 운이 좋아서 강경자 캐릭터를 할 수 있었던 게 감사한 것이고, ‘더 로드’는 ‘이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여배우가 몇이나 있었을까?’부터 생각이 들고, 처음부터 ‘왜 나지? 왜 내가 해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운명적으로 다가온 숙제 같은 작품이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지 말고 내 인생의 숙제라고 생각하면서 풀어나가 보자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할 때 힘들었다면 그만큼 자신감도 얻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신감을 얻었어도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데 막막하기는 또 마찬가지더라. 자신감을 얻고 나서 다음 작품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다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다음 작품에서도 또 차서영이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김혜은은 “대중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은 예전부터 더는 그려진 게 없었다. 그냥 내가 살아가는 과정은 시청자 여러분이나 관객 여러분, 그리고 필모그래피가 이야기 해준다 생각한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보여주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생각한다.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아시겠지만, 쉬운 작품만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내가 해야겠다고 판단되면 마주 해온 것 같다. 좋은 역할, 좋은 이미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이미지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작품들에 이미 해탈했다.(웃음) 제가 했던 캐릭터 중에 좋은 역할이라고 하면 ‘이태원 클라쓰’의 강민정 캐릭터인 것 같다. 그런 작품만 하고 싶지 않고,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작품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이야기했다.
▲ “‘차서영 같다’라고 기억해주세요”
‘더 로드’를 통해 인생 캐릭터를 또 하나 추가한 김혜은. 그는 ‘더 로드’와 ‘차서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고 싶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고마워하는 캐릭터인 차서영. ‘더 로드’는 나를 돌아보는 배우로서 내 한계나 내가 채워야할 것을 드러나게 하고 그걸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한 작품이다. ‘차서영 같다’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차서영 같다’라는 것은 이기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가 다한 성공인데, 결과적으로 차서영이 ‘이게 성공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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