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FM 방송에 정성을 보탭시다"..모금활동 벌이는 光州 고려인마을 사람들

권경안 기자 2021. 9. 2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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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24시]
광주고려인마을대표 신조야씨(왼쪽)와 고려인 3세 전올가씨. /권경안 기자

“즐거운 마음으로 냈어요.”

고려인 3세 전올가(36)씨는 최근 광주 고려인마을이 자체 방송국을 설립하는 데 쓰일 성금 1000만원을 기부했다. 고려인 1만여 명이 사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는 지금 모금 운동이 한창이다.

전씨는 지난 2010년 남편과 함께 세 살 아이를 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다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부모는 배추, 오이 등을 길러 반찬을 만들어 팔았다. 아버지가 먼저 살 길을 마련하기 위해 2007년 무렵 광주에 왔다. “여기 왔을 때 가방 하나 들고 왔어요. 병원비 내기도 어려웠죠. 지금은 가족들이 식당을 내고, 카페도 내고, 잘살고 있어요.” 전씨는 “고려인들은 서로 의지하며 큰 힘이 돼 왔다”며 “고려인들이 소식과 정보를 주고받고, 어려울 때 상담도 하는 그런 방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 FM 방송 만들자”

고려인마을은 지난 8월부터 고려인마을 방송국 시설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목표 금액은 1억원. 지금까지 3353만원을 모았다. 고려인마을은 2016년 FM 마을방송을 두 달간 시험 방송하고 휴대전화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방송을 해왔다. 그러다 지난 7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고려FM라디오’(공동체 라디오 방송)를 정식 허가받았다. 방송통신위는 장비 구입비와 운영비를 제외한 프로그램 제작비를 지원하게 된다.

내년 3월 정식 개국할 예정인 고려 FM 라디오는 이주민 소식, 청소년과 청년들의 이야기,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상담, 음악 등을 담은 프로그램을 편성할 계획이다. 고려인마을이 있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주민 40만여 명은 물론이고, 인터넷 라디오로 국내·외 50여 만명의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방송할 계획이다.

고려인 3세로 ‘고려인마을 대모’로 통하는 신조야(고려인마을 공동대표)씨는 “러시아 등지의 고려인방송은 기존 방송국의 일부 시간을 받아서 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렇게 온전하게 방송할 수 있는 것은 처음”이라며 “조국에 정착하고,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방송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방송국 설립 모금 운동이 활발한 월곡동 고려인마을 일대에선 러시아말과 우리말이 함께 쓰인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과일, 채소, 빵, 주류 등을 파는 업소들이 있고, 카페도 있다. 이 거리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조국을 찾아온 고려인들을 비롯해 베트남,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아시아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지내고 있다,

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 거리. /권경안 기자

고려인들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신 대표를 중심으로 먼저 정착한 이들과 중앙아시아와 국내 다른 지역 고려인들과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작동하면서 광주가 정착지로 떠오르게 됐다. 국내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경기도 안산 고려인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고려인 거주지가 됐다.

◇고려인 문화관도 문 열어

올해 고려인마을에는 ‘월곡 고려인 문화관’이 들어섰다. 1~2층을 고려인 역사유물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와 고려인 아동센터로 쓰이다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관으로 재탄생했다. 고려인들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월곡고려인 문화관. /권경안

러시아 연해주,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역사를 알게 해주는 역사 문화 및 생활 자료가 2만여 점에 이른다.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고려신문 기자 등으로 20년 이상 활동한 김병학 고려인 역사유물 전시관장이 귀국하면서 들여온 자료들이 주축이다. 그중 고려인 모국어 문화예술 기록물로 명명된 자료들은 지난해 국가지정기록물(제13호)로 등재됐다.

김 관장은 “고려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생겨 다행”이라며 “지난 5월 문을 연 이후 1800여 명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광주 태생인 그는 1991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로 파견됐다.

전시관에선 고려인 150여 년의 역사를 ‘이주와 정착’ ‘항일운동과 문화운동’ ‘강제 이주와 시련의 극복’ ‘황무지에서 피워낸 민족혼’이라는 4개 주제로 보여주고 있다. 항일운동가와 계몽운동가, 한글문학작가, 산업계 종사자 등 고려인들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자료도 전시하고 있다. 강제 이주 사건 등 고려인의 역사에 일어난 주요 사건을 조명하는 공간도 있다.

최근 이곳에서 연 ‘홍범도 특별전’이 관심을 끌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지만, 국내외에서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자료는 매우 희귀하다. 고려인 문화관은 특별전을 통해 홍 장군의 원본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홍 장군도 1937년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그의 유해가 지난 8월 국내로 봉환됐다. 김 관장은 “소장하는 자료들을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인으로 불리는 고려인 3세 김블라디미르씨는 “‘죄 없는 죄’로 강제 이주당한 역사를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역사를 증언하는 너무도 소중한 자료들을 보면서, 이제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대 러시아문학부 교수였다. 자녀를 따라 2010년 입국, 전남 나주 배 과수원과 무안 양파밭 등지에서 일하며 광주에 정착했다.

◇공동체 정신 살리려 ‘고려인의 날’ 연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고려인마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도 감염자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마을 공동대표 이천영 목사는 “이번 추석에는 어떤 모임도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감염이 없었던 예년의 경우 고려인들은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추석 연휴에 어떤 행사도 갖지 않기로 했다.

이 목사는 “대신 공동체 정신을 살리기 위해 코로나 상황을 고려하면서 오는 10월 셋째 주 일요일 대면 또는 비대면 방식으로 ‘고려인의 날’ 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면 행사로 할 경우 월곡동 공원에서 열게 된다. 고려인들이 노래 등 장기를 자랑하고, 선물도 나눌 예정이다. 쌀, 밀가루, 식용유, 청어 등이 인기 품목이다. 고려인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사진 자료를 전시하고, 현장에서 의료진이 건강 상담도 한다.

고려인 3세 엄엘리자씨는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 행사가 꼭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인마을에서는 모금 활동이 빈번하다. 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거나, 사고를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서로 처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양속(良俗)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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