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미래의 '전기요금 폭탄' 막는다

김정수 입력 2021. 9. 20. 11:06 수정 2021. 9. 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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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정부, 연동제 따른 전기료인상 2분기 연속 유보
연료비 변동분 주기적 반영 제도 취지 실종 상태
게티이미지뱅크

“이번에는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다. 물가 영향 등을 고려해 이번에도 동결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직후인 23일 나올 한국전력공사의 4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 발표를 앞두고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 상반되는 예상이 분분합니다. 연료비 조정단가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전기요금은 오를 수도, 동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기요금을 유류, 석탄 등 발전에 사용되는 연료가격 변화에 맞춰 조정하는 것이 ‘연료비 연동제’입니다. 정부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 체계의 일부로 올 1월부터 ‘연료비 조정요금’을 신설한 것이죠.

연료비는 전기 원가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난해 한전 결산자료를 보면, 수력원자력과 중부발전 등 6개 발전자회사에서는 연료비로 14조7940억원을 썼습니다. 한전이 민간 발전사들에 지불한 전력구입비를 뺀 매출원가의 41%에 해당합니다. 민간 발전사들의 연료비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대부분 비싼 천연가스 연료를 쓰는 이들의 연료비 비중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료비는 고정비 성격이 강한 나머지 비용과 달리 수시로 변동합니다. 한국석유공사가 정리한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의 월평균 유가 추이를 볼까요. 작년 1월 배럴 당 64.32달러였던 두바이유는 3개월에 3분의 1 수준인 20.39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그러고는 2개월 만에 2배로, 1년4개월 만인 지난달에는 3.5배인 70.43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런 급변동은 최근의 특별한 현상이 아닙니다. 더 이전 10년 사이의 연평균 가격으로 따져봐도 비슷합니다. 이 기간 중 최저가(2016년 41.4달러)와 최고가(2012년 109.0달러)의 격차는 2.5배에 이릅니다.

연료비가 요동쳤지만 2013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전기요금 단가는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올 1분기 연동제가 시작되면서 인하만 한 번 이뤄진 것이 전부지요. 이런 상황에서 한전의 손익은 연료비의 변동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료 가격이 내려가면 흑자를 내고 올라가면 적자를 쌓게 됩니다. 연료비가 높을 때의 적자는 낮을 때의 흑자로 메울 수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손익이 예측할 수 없는 요소에 따라 출렁이는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안정적 전기 공급에 필요한 장기적 투자가 제때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달성을 뒷받침할 전력 인프라 구축도 마찬가지이지요.

전기요금 인상이 힘든 이유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과 소비자들의 저항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 인상이 거론될 때마다 언론에는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폭탄을 던지려는 쪽은 당연히 요금을 결정하는 정부·여당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은 정부·여당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할 각오를 하지 않고는 힘든 일이 됩니다.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는 연동제 도입 결정을 발표하며 제도 도입의 기대 효과로 “연료비 변동분이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됨에 따라 가격신호 기능이 강화되며,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소비자의 예측가능성 제고를 통한 합리적 전기소비 유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한전은 ‘전력산업 안정성 확보’도 주요 기대 효과로 홍보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연료비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줄어 전력사업자들의 재무 건전성이 높아진다는 설명입니다.

주유비는 급등해도 ‘주유비 폭탄’ 비유 안 들리는데

하지만 공식 발표자료에는 나오지 않은 연동제 도입의 취지가 하나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전기요금 인상이 좀 쉽게 이뤄지게 하자는 것입니다.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이 집계한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값은 지난해 11월 평균 리터 당 1320원에서 지난달엔 평균 1646원까지 올랐습니다. 상승폭을 계산하면 24.7%가 됩니다. 연료 계기판에 불이 들어온 중형차가 주유소에 가서 연료통을 가득 채우는데 9개월 전 8만원이 들었다면 지금은 10만원이 듭니다. 평균적 4인 가구 월 전기요금 5만5천원의 약 두 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유소에 갈 때마다 오른 가격표를 보면서 언짢을 법도 합니다만 ‘주유비 폭탄’이란 얘기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기름값 변동이 정부가 손 쓸 수 없는 국제유가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 인상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만들려는 것이 연료비 연동제 도입의 중요한 취지의 하나입니다.

전남 나주시 한국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내부. 한국전력거래소 제공

이런 취지는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더 정확히 하자면 실종이 아니라 정부가 내다 버렸다는 비유가 더 적합해 보입니다. 연동제가 정착하려면 정부 개입이 최소화돼야 하는데, 연동제 첫 출발부터 요금 조정을 통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행 연동제는 설계부터가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꼴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에 시행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과거 연동제와 비교해 봐도 확연히 후퇴했습니다. 연료비 조정 상한선을 크게 낮추고 조정분 반영 주기를 매달에서 매분기로 늘리면서 연동의 의미를 퇴색시킨 것이죠.

과거 연동제는 기준 연료비 대비 50%를 조정 상한선으로 설정했습니다. 반면 현행 연동제가 조정 상한선으로 정한 ㎾h 당 3원은 주택용 전력량 요금(182.9원) 대비 1.6%에 불과합니다. 월 350㎾h를 사용하는 평균적 4인 가구 요금이 최대 1050원 오르내리는 수준이지요. 국제유가가 2개월 만에 100% 이상 급등락하기도 하는 상황에서 요금을 3개월 마다 최대 1.6% 범위 안에서 조정하는 것은 사실 ‘연동’이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연동제 시행 첫 분기인 1분기 전기요금을 조정 상한선인 ㎾h 당 3원 내리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2분기에 연료비가 상승하며 전기요금을 ㎾h 당 2.8원 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자 정부는 유보 권한을 발동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조처라는 설명이었습니다. 7년여 만에 처음 이뤄질 뻔했던 전기요금 인상이 이렇게 무산되면서 연동제는 출발부터 흔들리게 됐습니다. 1㎾h에 2.8원 인상은 평균적 4인 가구의 월 전기요금을 980원 올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연동제를 제대로 출발시켜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3분기 인상도 코로나19 외에 물가 상승 우려까지 이유로 들어 유보시켰습니다. 비판이 쏟아질 것을 알면서도 잇따라 조정 유보권을 발동한 것은 탈원전과 연결시킨 보수 언론들의 공격과 그에 따른 여론 악화 우려도 주요하게 고려한 결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유보권 발동이 더 이어지면 연동제는 정말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공격을 견디면서 전기요금은 연료비가 오르면 따라 오른다는 인식을 확산시키지 않고는 전기요금 폭탄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도 전기요금 동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료비 상승으로 올라야 할 요금이 오르지 않으면 그것은 한전의 적자로 누적됩니다. 한전의 적자는 결국 소비자들이 세금이나 미래의 더 비싼 요금 부담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습니다. 적자는 이처럼 언젠가 메우더라도 한전의 경영이 불안정해져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투자가 늦어지는 피해는 메우기 어렵습니다. 투자에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동제, 전기요금의 ‘탈정치화’ 의미도 커

연료비 연동제로 전기요금이 쉽게 조정된다는 말은 전기요금 조정에서 정치가 배제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여론이 전기요금에 워낙 민감한 탓에 요금 조정은 언제나 정치적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요금을 내리면 선심 정책, 올리지 않으면 지지율에 대한 영향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따라붙곤 합니다. 늘 지지율 그래프를 쳐다보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은 전기요금 조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에너지 소매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벌페트롤프라이시스의 지난해 12월 기준 자료를 보면, 산유국인 노르웨이를 제외하고 선진국 가운데 한국보다 전기요금이 싼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과 조건이 비슷한 일본도 한국의 2배 수준입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기요금이 정치와 계속 묶여 있어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연료비 연동제는 바로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추석 연휴 직후 정부는 또다시 고심한 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유가 상승으로 연동제를 그대로 적용하면 전기요금이 조정 상한선인 ㎾h 당 3원 올라가야 합니다. 정부가 이번에도 유보권을 발동해 계속 연동제의 발목을 잡을지, 아니면 뒤늦게나마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풀어 줄지 주목됩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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