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골든벨' 을 울려줍니다".. BBQ 회장이 증인석에 선 이유 [법정이야기]

이희진 2021. 9.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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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513호 법정. 대기업 회장이 증인석에 앉았다. 주인공은 윤홍근(66) BBQ 회장. 이날 윤 회장은 4년이 훌쩍 지난 2017년 5월의 일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섰다.

사건은 2017년 5월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윤 회장은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서 개점 예정이었던 매장을 둘러본 후, 인근서 영업 중인 봉은사역점을 찾았다. 윤 회장이 봉은사역점에 도착한 시간은 대부분의 치킨집이 한가한 오후 1시쯤.

사건은 윤 회장이 조리시설을 확인하기 위해 2층 주방에 들어서려 할 때 발생했다. 윤 회장이 주방에 발을 들여놓자 주방직원이 윤 회장을 막아선 것이다. 윤 회장이 “본사 회장”이라고 재차 밝혔지만 직원은 여전히 윤 회장이 주방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윤 회장은 결국 주방에 들어가지 못한 채 가맹점 방문을 마쳤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2017년 11월, 한 언론은 윤 회장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새끼 안 되겠네. 폐점시켜!”라며 폭언을 했다는 보도를 했다. 손님 증언도 있었다. 당시 2층에 있었다는 이모(42)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딱 TV에서 보던 그거였어요. 갑질. 소리 지르고 나이 드신 양반 입에서 나오지 않을 법한 소리도 나오고 했으니까요”라고 밝혔다.

봉은사역점 점주였던 이모(46)씨는 윤 회장이 다녀간 이후 BBQ가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중량 미달인 닭을 공급했다고도 주장했다. 언론을 통해 ‘윤 회장 갑질 논란’이 일자 BBQ 매출은 감소했고, 브랜드 이미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사건이 반전되기 시작한 건 언론보도가 나온 지 약 10개월 뒤인 2018년 9월.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김씨가 BBQ 본사와 윤 회장 및 임직원을 가맹사업법 위반, 업무방해, 모욕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관련자 전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윤홍근 BBQ 회장. 연합뉴스
검찰은 “윤 회장과 직원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위력 행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며 “범죄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언쟁 당시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 제출을 요구했으나 김씨는 이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약 1년 뒤인 2019년 11월, 가맹점주 김씨와 당시 언론 인터뷰를 했던 이씨를 되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윤 회장의 폭언과 BBQ의 갑질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검찰 조사 결과, 이씨는 당시 매장에 없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검찰은 공소장에 “사실 2017년 5월12일 BBQ 봉은사역점 2층에서 윤홍근 회장과 직원들 사이에 주방 진입과정에서 상호간에 언성을 높이는 정도의 소란행위가 잠시 발생했을 뿐”이라며 “2층 매장에는 손님이 없었으며 이씨는 현장에 없어 위 상황을 목격한 사실이 없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이어 “피고인들은 공모해 피해자 BBQ 및 윤홍근 회장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인 방송 및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지난 15일, 윤 회장은 증인석에 앉아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날 가맹점 사람들이 증인 일행을 어떻게 대했냐”는 검찰의 질문에 윤 회장은 “평상시에 점포를 갔을 때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를 맞이했기 때문에 당황스럽고 이상했다”며 “(제가 방문하면) 대부분의 가맹점 사장님들이 나오셔서 ‘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하고 서로 반기는 분위기인데 그날은 전혀 다른 낯선 곳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윤 회장은 평소 다른 가맹점을 방문했을 때의 상황도 설명했다.

“보통 다른 곳을 가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머무릅니다. 환영인사를 하고 주방 안내를 받고 제일 먼저 하는 건 치킨을 시키는 일입니다. 팔아줘야 하기도 하고, 사장님들이 (조리하는 걸)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5~10가지 정도 주문을 넣고 치킨이 나오기까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직원들 격려금을 주기도 하고, 고객이 계시면 일일이 다니면서 악수하면서 인사하고 그분들이 드신 음식을 제가 계산해줍니다. 한마디로 ‘골든벨’을 울려줍니다.”

검찰은 2층 주방에 올라가 둘러보려 할 때 직원이 막아선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윤 회장은 “회장이라고 하고 올라서려고 했는데, ‘여길 왜 들어오세요’라며 거친 목소리로 말해서 굉장히 당황스럽고 무안했다”며 “회장이라고 말하고 다시 들어가려 했는데 구석에 있던 다른 사람이 ‘내가 주방장인데, 여긴 내 공간인데 아무도 못 들어와! 대통령이고 뭐고!’라고 하며 못 들어오게 막았다”고 했다.

검찰은 “이 새끼가”라는 욕설을 한 사실이 있냐고 물었고, 윤 회장은 “없다”며 “처음 당하는 경우여서 창피하고 어쩔 줄을 잠시 몰랐다. 발을 빼고 돌아나오며 ‘허, 이 사람들 보게. 내가 본사 회장이라니까’라는 혼잣말을 하며 돌아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날 검찰은 가맹점주 김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언론 인터뷰를 한 이씨에겐 징역 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 변호인은 최후진술에서 “(당시) 욕설과 행패가 있었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밝혔다. 김씨 역시 “대기업의 피해자가 된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 피고인으로 앉아있다는 게 참담한 심정”이라며 “저는 거짓말을 한 사실이 없고, 들은 대로 BBQ에 얘기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회장님 같은 분들이 잘못했다고 판단했는데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해 인터뷰를 안 해줘서 (사건이) 묻힐 수도 있다고 하길래 순간 기분에 치우쳐서 (당시 매장에) 있지도 않은 걸 있었다고 말한 건 제 잘못인 걸 100% 인정한다”며 “당시 주방에 계셨던 분들이 2년간 일주일에 3~4번씩 보던 분들이라 그분들이 거짓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다음달 22일을 선고기일로 잡았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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