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사라지는 박원순의 '2014년 유산'

허남설 기자 입력 2021. 9. 20. 09:44 수정 2021. 9. 20. 1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오세훈 서울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의 10년 시정을 정리하고, 정책 방향 전반을 바꾸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5일 발표한 향후 10년 마스터플랜인 ‘서울비전 2030’이 서울의 미래 설정이라면, 이에 앞서 박 전 시장 재임시절 시행한 사업 실태를 줄줄이 파헤친 것은 과거 청산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협동조합·시민단체를 표적 삼아 감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비위 혐의만 지나치게 부각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단체장이 바뀐 뒤 시정 전환은 자연스러운 절차다. 비리를 찾는 데 집중한 ‘오세훈식 적폐청산’이 유난히 시끌벅적할 뿐, 지난 5개월 동안 시정 변화는 꾸준히 계속됐다. 특히 주택과 도시 부문에서 기조 변화가 뚜렷하다. 오 시장 1호 공약이기도 한 ‘스피드 주택공급’이 지상과제가 되면서 걸림돌이 될만한 제도는 빠짐없이 재검토되는 상황이다. 이 중엔 2014년을 전후해 시작한 것들이 많다. 박 전 시장이 재선에 성공해 시정 운영에 탄력을 받았던 해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철거 전 전경. 서울경관아카이브


■2014년 ‘근현대 흔적남기기’
일단 ‘재생’과 ‘공유’로 대표됐던 ‘박원순 유산’ 청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조만간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재건축 흔적남기기’ 취소가 우선적으로 꼽힌다. 서울시는 2013~2014년 ‘정비사업 흔적남기기’ 사업을 추진했다. 흔적남기기는 고가 같은 기반시설이나 공공건물, 아파트 등의 일부 구조를 보존하자는 취지로 시행했다. 박 전 시장 취임 전 뉴타운 등 정비사업 바람이 거세 그 가치를 평가받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근현대 유산이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다만 개포주공1·4단지 재건축 부지에서는 새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옛 5층 아파트 1~2개 동을 덩그러니 남기는 방식이 돼 논란이 컸다.

서울시는 이미 재건축 흔적남기기를 재검토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개포주공 등 여러 재건축조합에서 서울시에 관련 청원을 제출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원을 처리하는 절차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공아파트가 ‘진짜 안녕’을 고하는 모습은 ‘박원순표 도시정책’의 퇴장을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2030 서울플랜’
폐지를 공식화한 것 중엔 이른바 ‘35층 룰’도 있다. 오 시장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폐지 방침을 밝혔다. 올해 말 발표할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35층 룰은 서울시가 2014년 발간한 ‘2030 서울플랜’에서 순수 주거용 건물 높이(층수) 상한선을 35층으로 규정한 것을 말한다. 상업·주거 등 복합 건물은 50층까지도 건축이 가능하다.

이 기준은 본래 가이드라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박 전 시장 시절엔 도시경관적 측면 등을 고려해 35층을 획일적으로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분양가 산정 시 ‘고층 프리미엄’이 줄어들기 때문에 재건축조합들이 완화를 요구했다. 오 시장 취임 전에도 서울시는 이미 기준 변경을 ‘비공식적 방침’으로 세웠다고 전해진다. 2030 서울플랜에서는 높이 기준을 용도지역별로 나눴는데, 2040 서울플랜에서는 높이 기준을 용적률별로 나누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른바 ‘15층 룰’을 완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망을 고려해 한강변에 면한 아파트 단지 첫 줄 높이를 15층 이하로 제한했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개별 단지마다 여건에 맞춰 다르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이 이 같은 높이 제약을 일제히 벗어나면 시민 공동의 도시경관을 해칠 것이란 우려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서울 성곽길에서 바라본 한 구릉지 저층주거지. 우철훈 선임기자


■2014년 ‘뉴타운 출구전략’
오 시장이 지난 5월26일 발표한 ‘6대 재개발 규제완화 방안’은 이미 후속 절차까지 대부분 마무리지었다.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한 게 대표적인데, 이 역시 2014년 박 전 시장 시절 ‘뉴타운 출구전략’ 중 하나로 강구한 제도다. 재개발 희망지역에서 주택 동수가 아닌 면적 비율로 노후도를 따지도록 기준을 더 까다롭게 만들었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주거정비지수제 폐지와 구역 지정·정비계획 수립 등 재개발 초기 절차·기간 단축을 위한 조치를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통과시켰다. 남은 관건은 2종 일반주거지역 중 7층 높이제한 규제를 푸는 방안이다. 서울시는 연구용역을 거쳐 이달 말 완료를 목표로 잡고 있다. ‘2종 7층’ 지역은 서울 전체 주거지역 325㎢ 중 85㎢에 달하고, 주로 구릉지에 자리한 오래된 주거지가 많기 때문에 이 지역 높이 규제를 풀 경우 파급 효과는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거 ‘뉴타운 바람’에 휩싸인 서울 곳곳에서 주민 찬반 갈등, 원주민 내몰림, 개발지 주변 전세 급등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재개발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문제들이다. 서울시는 “정비의 시급성, 구역 안배 등 속도조절을 해가며 낙후된 노후지역을 신규구역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