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맞으면서까지 잘 해내야 할 일은 없다
평안하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종종 부모님에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효자손에 '사랑의 매'라고 동생과 직접 써 넣었던 기억, 낮에 엄마한테 종아리를 몇 대 맞고 자고 있는데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몰래 종아리를 쓰다듬어줬던 기억. 아빠한테 맞았던 기억은 딱 한 조각이 살아 있다. 내가 엄마랑 큰 소리로 싸워서 아빠가 매를 들었는데, 아빠가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내 잘못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빠가 기분이 나빠서 운 나쁘게 맞은 거라고.
내가 까칠하기 때문일까. 나는 부모님이 내게 물질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전적으로 정신적 지지를 해 주며 키워주셨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지만, 체벌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감정적으로 체벌했을 때는 어린 나이에도 이건 뭔가 부당하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에 나쁜 기억이다. 효자손을 스스로 '사랑의 매'라고 인식했던 것은 당시에는 그렇게 쓰면서 스스로를 '착한 어린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그것대로 나쁜 기억이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내면화해 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끔 있었던 체벌이 모두 훈육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즉, 공부를 못해서 혹은 시험을 못 봐서 맞았던 적은 없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안 맞은 게 아니다. 훈육 목적이라면 때려도 된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나의 능력이나 성취가 부족하다는 것이 맞아야 할 이유가 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영화 '4등'(2014)에는 늘 4등을 해서 맞는 어린이가 나온다. 준호는 수영 선수를 꿈꾸는데, 대회에 나가면 늘 메달권인 3등 안에 들지 못하고 4등을 한다. 속이 타는 준호 엄마 정애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능력 있다는 수영 코치 광수를 섭외한다. 광수는 준호를 2등까지 올려놓는 성과를 보여주는데, 그 성과의 비밀은 체벌이다.
광수는 준호를 때린다. 정신 차리라고. 더 잘하라고. 그렇게밖에 못 하냐고. 집중하라고. 초등학생을 '엎드려 뻗쳐' 시켜놓고, 대걸레 막대를 뽑아서 때린다. 오리발로도 때린다. 아이의 다리에는 멍이 든다. 광수는 때린 후에 아이에게 떡볶이를 사준다. 마사지도 해 준다. 그러면서 말한다. 네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라고. 네가 열심히 안 하니까 몽둥이를 드는 거라고.
세상에 어린 아이가 맞아가면서까지 잘해내야 할 일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못 냈다고 직원을 때리는 사장이 있다면, 우리는 '그래, 그렇게 때려서라도 회사 이익을 올려야지'라고 수긍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성인에 비해 약자인 어린 아이를 때리는 일에는 그보다 관대한가.
세상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할 일은 없다. 운동이든 공부든 아이가 뭔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이 체벌과 연관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수영을 죽을 만큼 열심히 안 하는 것, 메달을 못 따는 것이 아이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있고 힘도 센 어른이 아이를 때려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어른이 아이를 때려야 할 이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광수는 왜 준호를 죄책감 없이, 심지어는 자기 나름의 탄탄한 논리까지 내세워가면서 때릴까. 광수 스스로가 맞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신기록까지 세운 적이 있던 청년 시절, 광수는 도박에 빠져 선수촌에 무단으로 빠지고, 다시 나타난 광수를 코치는 무자비하게 때린다. 대걸레 밀대로 100대 맞고 끝내라는 코치의 말에 광수는 17대까지 맞다가 참지 못하고 선수촌을 뛰쳐나온다.
자기가 맞아서 수영을 그만뒀으면, '나는 때리지 말고 가르쳐야겠다.' 라는 결론에 다다라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광수는 코치의 폭력을 신문사에 제보했다가 거부당하고,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내가 성공하지 못한 건, 내가 잘할 때 나는 때리지 않고 다른 선수들만 잡도리했던 선생님들 잘못이다. 돌이켜 보니 날 때렸던 선생님들이 그나마 내가 잘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이상하게 비틀린 이유를 단 폭력은 대물림된다. 광수에게 맞은 준호는 남동생을 때린다. 자기가 당했던 것과 똑같이, 동생을 '엎드려 뻗쳐' 시키고, 몇 대 맞을지 정하라고 말하고, 네가 맞을 짓을 했으니 때리는 것이라고 한다. 폭력은 귀신 같이 자기보다 약한 자의 자리를 찾아 흘러 들어간다. 어른들이 저지른 체벌의 장면을 어린 아이들이 그대로 재현하는 장면은 섬뜩하다.
올해 1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민법의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면서 우리나라는 법적으로도 체벌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가 됐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지 말자는 말이, 더구나 아이는 성인보다 약하니까 그러지 말자는 말이 이제야 법적으로도 효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수많은 광수를 묵인하고, 광수를 따라하는 준호를 만들어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그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1등이든 4등이든 꼴등이든, 내 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귀하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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