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향, 제사 필수품 향에도 명품이 있다 [추석에 읽는 조용헌 살롱]
명절에 조상 제사 지내는 풍속이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 뿐이다. 제사의 필수품이 향(香)과 술이다. 조상의 혼백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흩어진다.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제사상에 피우는 향은 조상의 혼(魂)을 달래는 용도이다. 술은 백(魄)을 달랜다. 백을 달래기 위해서 집집마다 담그는 술이 따로 있었다. 특히 양반 집에서는 제사 지낼 때 필요한 술이 없어서 다른 집으로 빌리러 간다는 것은 생각할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손님이 왔을 때 자기 집에서 담근 가양주를 내 놓는 것이 풍습이었다. 행세하는 선비 집안에는 반드시 술이 있었다. 접빈객(接賓客) 봉제사(奉祭祀)의 필수품이 술이었다.
향은 어떤가? 아직도 문중 어른 제사에 집안 사람들이 모이는 전통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울향(鬱香)’을 명품 향으로 꼽는다. 울릉도 향나무의 향이 가장 부드럽고 진하다. 다른 향나무의 향기와는 급이 다르다. 울릉도 향나무는 순탄하게 자란 나무가 아니다. 척박한 바위의 틈새에서 강한 비바람과 눈을 맞고 생존한 나무이다. 돌 틈에서 해풍과 폭설에 시달리며 큰 나무이다. 인간도 비바람에 시달린 사람들이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고, 나무도 시달리며 큰 나무들이 유독 향기가 강하다.
‘울향’을 ‘석향(石香)’이라고도 부른다. 울릉도 절벽 바위틈에는 수령 2000년이 넘는 향나무가 아직 남아 있다. 안동 장날에는 ‘울향 사세요’하고 외치는 행상도 많았다. 안동 선비 집안의 고문서들을 보니까 ‘담배 3근과 울향을 맞바꾸었다’는 기록도 있다. 울릉도 사람들은 담배가 귀했고, 선비 집안에서는 명품향인 울향이 필요했던 것이다.
울진의 구산항에는 바람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풍헌(待風軒)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료들이 울릉도로 배를 타고 갈 때 순풍이 불어 오기를 기다리던 대기소였다. 울릉도까지의 해로는 대략 140km 정도. 순풍을 만나면 1박2일.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 4~5일도 걸리는 거리였다. 울릉도 사람들은 목숨 걸고 험한 바닷길을 건너 특산품인 울향을 가지고 와서 생필품과 바꿨다. 울릉도에서 육지에 나가 돈이 될만한 물건은 울향이었다. 엊그제 울진의 어느 선비 집안 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울향을 나에게 선물하였다. 태우지 않고 그냥 생으로 울향 조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가끔 코에 대고 맡아보니까 조선 선비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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