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피' 마르는 시기..이웃 위해 팔뚝 내준 '지정헌혈'

박동해 기자 2021. 9.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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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선순환되서 돌아오겠죠"
지정헌혈에 대한 우려 있지만 "오히려 헌혈 증대 효과 있어"
지정헌혈로 환자들에게 자신의 혈액을 나눈 홍성호씨(34)가 헌혈을 하는 모습. 홍씨는 평생 125회의 헌혈을 했다. © 뉴스1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항암치료 때문에 입원을 해야 해서 혈소판을 지정헌혈 받아야 한다고 하네요.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7일 '세상을 구하는 헌혈자 모임'이라는 이름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는 하루에도 몇건씩 헌혈자를 구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긴급히 수혈이 필요한데 병원에 남아있는 혈액이 부족하다는 사연이 덧붙었다. 주기적으로 수혈이 필요한 혈액암 환자들의 사연이 많았다.

이 대화방은 지난 2019년 헌혈자와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이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대화방에는 430여명의 사람들이 수시로 헌혈과 관련한 정보를 나누고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의 정보를 공유했다.

대화 사이사이 실제 헌혈에 참여해 준 시민들 덕분에 가족의 병세가 완화됐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난 10일에는 '골수이식을 받은 열두살 아들이 헌혈을 해준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퇴원을 하게 됐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정헌혈'로 직접 환자 찾아 돕는 시민들

대화방에 참여한 사람들은 헌혈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을 읽고 대상자를 지정하는 '지정현혈'을 했다. 지정헌혈이란 말 그대로 수혈을 받을 대상자를 지정해서 헌혈을 하는 방식이다.

주로 치료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혈을 해야 해 비축분이 필요한 혈액암 환자 등이 지정헌혈을 찾는다. 더욱이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체적인 헌혈량이 줄어들면서 지정헌혈을 찾는 환자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병원에서 혈액이 부족한 경우 환자들에게 '직접 지정헌혈을 구해오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대화방에서 지정헌혈을 구하는 환자 가족들 대부분이 병원에서 지정헌혈을 구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헌혈자를 찾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헌혈 활동을 해온 대학생 박세용씨(22)는 이 단체 대화방을 통해서 지정헌혈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박씨는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지정헌혈을 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두 번 해드렸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에 그분이 돌아가시기는 했는데 손녀분이 여러번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라며 "헌혈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역시 이곳을 통해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고 지정헌혈에 참여한 직장인 홍성호씨(33) 또한 "일반헌혈과 지정헌혈을 할 때의 차이는 지정헌혈을 할때가 조금 더 직접적인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이라며 "수혈자의 가족분께서 감사의 말을 전해주고 이러한 얘기들이 카톡방에 단체로 오고갈때 선한 영향력들의 전파가 이루어지는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수혈자의 가족이 지정헌혈을 해준 박세용씨(22)에게 감사의 뜻을 답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박세용씨 제공)© 뉴스1

◇지정헌혈 확대 우려 있지만…"오히려 헌혈 확대에 도움" 의견도

헌혈자들과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직접 연결해 주는 지정헌혈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혈액 수급이 국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중앙 통제를 벗어난 개개인 간의 지정헌혈이 늘어나면, 결국 통제 가능한 혈액 비축량이 줄고 정작 혈액 공급이 시급하지만 지정헌혈자를 구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경우 수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정헌혈은 전체 헌혈량 대비 2~3% 수준이지만 전체 헌혈량은 줄고 있는 반면 지정헌혈량은 늘어나고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에서 2019년 사이 전체 헌혈량은 220만9842유닛에서 217만4385유닛으로 줄어들었음에도 지정헌혈량은 같은 기간 1만8472유닛에서 4만3794유닛으로 늘어났다며 그럼에도 정부의 관리 대책이 전무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최 의원은 코로나19로 헌혈량이 줄어든 2020년 1월부터 9월 사이에도 지정 헌혈량은 5만3414유닛으로 전년 대비 큰 증가 폭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다만 헌혈자들은 지역 편차,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혈액 수급 문제 등으로 지정현혈이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또 지정헌혈이 시급하게 헌혈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적으로 알릴 수 있어 오히려 헌혈의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 헌혈의 필요함을 인식시키고 헌혈 참여자 독려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세용씨의 경우 "헌혈에 전혈이 있고 혈소판 등이 있는데 전혈 같은 경우에는 수량이 넉넉한 편이지만 혈소판의 경우에는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라며 "그래서(수혈이 많이 필요한) 혈액암 환자 같은 경우는 병원에서 지정헌혈을 받아오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지정헌혈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홍성호씨도 "수도권의 경우에는 혈액 공급이 많지만 지방 같은 경우는 헌혈의집도 한두곳밖에 없는 곳이 있어서 주변 분들이 시간을 내서 헌혈을 하러가기 힘들어요"라며 "수도권에는 큰 병원이 많아서 병원들의 재고도 있는데 지방에는 재고 관리가 어려우니까 모아둔 피가 없고 환자들에게 지정헌혈을 구해오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고 밝혔다.

이어 홍씨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혈액공급이 부족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점점 지정헌혈을 요청하는 사연이 많이 보여요"라며 "헌혈 자체가 많이 늘어서 어려운 환우분들과 가족들이 직접 이렇게 각종 사연을 올리면서 피를 구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정헌혈 경험자인 하범진씨(28)는 "지정헌혈이라는 게 누군가에게 혈액이 많이 갈 경우 그 사람은 경미한데도 혈액을 많이 보유할 수 있고 혈액이 부족해지면 급한 사람이 먼저 쓸 수 없으니까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반헌혈을 하고 있고 지정헌혈의 경우 주변의 사람이 아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지정해서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수급량이 늘어날 것 같아요. 헌혈을 안 하던 사람들도 필요해서 피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한편, 세상을 구하는 헌혈자 모임은 헌혈 참여 플랫폼인 '피플'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9년 서울과학기술대학 재학생들이 만든 피플은 헌혈이 필요한 환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헌혈자와 환자를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이다. 현재는 주요 개발자의 군입대 등의 문제로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지는 않고 있지만 홈페이지, SNS 등을 통해 헌혈자와 환자들을 이어주는 활동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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