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만든 10대 소년의 일기장..김원일 '마당깊은 집'

유동엽 2021. 9. 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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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의 소설입니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우리 소설 50편을 매주 이 시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19일)은 김원일 작가의 장편소설 '마당깊은 집'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궁핍한 삶을 소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입니다.

유동엽 기자가 소설가 김원일 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리포트]

3년이 넘도록 한반도 곳곳을 으스러트린 전쟁.

포성이 멎은 뒤에도 터전을 잃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던 사람들.

대구의 중심가, 여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제법 큰 한옥 '마당 깊은 집'이 소설의 무대입니다.

두세 명이 몸 누이기도 쉽지 않은, 다섯 식구가 살았던 단칸방.

팔순을 앞둔 원로작가의 유년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김원일/소설가 : "방이 뭐 요기서 요만 하죠. 사람 하나 누우면 키 될 만한..."]

소설의 주인공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무렵의 작가 자신.

12살 밖에 되지 않은 주인공은 어머니의 권유에 중학교 진학을 잠시 미루고 신문 배달을 하며 생활비를 보탭니다.

‘마당깊은 집’ 중에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신문이나 파는 내 신세가 서러워져, 그럴 때면 내가 찾는 소일 터가 역이었다."]

[김원일/1986년 인터뷰 : "어린 시절에는 그런 어머니를 참 원망도 했지만 제가 성장하고 난 뒤에 그런 어머니가 참으로 귀중한 어머니였구나."]

주인공 길남이를 무엇보다 힘들게 했던 건 '배고픔'이었습니다.

‘마당깊은 집’ 중에서.

["어머니가 남긴 밥을 보자 내 숟가락질이 더욱 빨라졌다. 내 밥을 어서 먹고 어머니가 남긴 반 그릇을 내 몫으로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김원일/소설가 : "우리집이 특히 가난했어요. 그런 얘기를 우리 친구들, 문인들 하고 하면 그 당시에 그렇게까지 곯고 어떻게 살아왔냐고..."]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이성천/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람들에게 향하는 독자의 연민의 시선이 결국은 독자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그래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김원일의 이 작품은요, 읽을수록 단맛이 나요."]

늘 배고팠던 형편에도 밥을 얻어먹은 아들에게 매를 들 만큼 엄격했던 어머니.

주인공이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소설의 긴장감은 고조됩니다.

[김원일/소설가 : "굉장히 나는 맞고 컸어요. 어머니가 삯바느질하다보니 자가 있잖아요, 자. 그거를 가지고 등줄기를 때리고..."]

그 시절에도 10대들의 흔한 반항은 '가출'.

하룻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없이 고깃국을 내어줍니다.

‘마당깊은 집’ 중에서.

["고깃국이 내 밥그릇 옆에만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 순간만은 내가 어머니 아들임을 마음 깊이 새겼다."]

1988년 출간된 이후 100만 부 가까이 팔리며,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마당깊은 집’.

때로는 문학이 실제 역사보다 더 생생한 기록이자 증언일 수 있음을 보여준 우리 소설사의 빛나는 유산입니다.

[김원일/소설가 : "1950년대 전쟁 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남았는가뭐 그런 걸로 기억되면...뭘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류재현/그래픽:정지인/화면제공:한국정책방송원/장소협조:대구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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