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공 편견과 싸우며 여기까지.." 유희관의 울림있는 100승 소감 [오!쎈 고척]
[OSEN=고척, 이후광 기자] 유희관(두산)의 역대 32번째 100승이 그 동안 31명 투수들의 100승보다 특별한 이유. 바로 ‘느림의 미학’이기 때문이다.
두산 베어스는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1 신한은행 SOL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15차전에서 6-0으로 승리했다. 이날 결과로 3연승을 달리며 키움을 제치고 단독 5위로 도약했다. 시즌 52승 5무 51패.
유희관은 선발투수로 나서 6이닝 6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6번의 도전 끝 시즌 3승이자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KBO리그 역대 32번째, 좌완 7번째이자 두산 좌완 프랜차이즈 최초의 100승이었다.
유희관은 경기 후 “100승을 돌이켜보면 1이라는 숫자가 100이 될 때까지 많이 힘들었고 쉬운 경기도 없었다. 느린 공을 갖고 많은 편견과 싸우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그걸 이겨내려고 노력했는데 어떻게 99승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1승하는 게 힘들었다. 의미 있는 100승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 동안 5차례의 등판과 달리 이날은 마음을 비우고 마운드에 올랐다. 유희관은 “마음이 많이 편했다. 지난 경기들에서는 100이라는 숫자를 의식 안 할 수 없었고, 잘 던지려고 하다 보니 마운드에서 급해졌다. 최근 LG전에서도 점수차가 많이 벌어졌는데 5회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있었다. 야수들이 차려준 밥상을 다 엎었다”며 “오늘은 100이라는 숫자가 아닌 편하게 던지려고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동료들이 도와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희관은 장충고-중앙대를 나와 2009년 두산 2차 6라운드 42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2013년부터 공이 느리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해 첫 10승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무려 8년 연속 10승에 성공했고, 올해 마침내 100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유희관은 “입단 때부터 두산에서 선발을 할 것이라고 나 또한 생각하지 않았다. 100승 대기록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떻게 보면 좋은 팀을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다. 좋은 동료, 감독, 코치가 나를 위해 노력해주셨다. 그리고 (양)의지, (박)세혁, (최)용제, (장)승현이에게 고맙다. 다른 선수들도 고맙지만 이 4명이 받아주고 열심히 리드해줬다. 100승에 있어 가장 고마운 게 포수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날 100승이 의미 있는 또 다른 이유. 그 동안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던 자신의 승리로 팀이 3달만에 5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유희관은 “내가 맨날 나와서 찬물을 끼얹었다. 잘 던지면 찬물을 끼얹고 잘 던지면 찬물을 끼얹었다”며 “100승도 중요하지만 팀이 5위로 올라가는 데 좋은 발판을 마련한 것 같다. 이제 매 경기가 중요한데 순위가 더 올라갈 수 있게끔 다음 경기 나갔을 때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유희관의 시선은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승인 장호연의 109승으로 향한다. 올해는 달성이 어렵지만 계약을 1년 연장한다면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 유희관은 “앞으로 몇 승을 할지 모르겠지만 목표가 있는 건 큰 동기부여가 된다”며 “과분한 기록을 세웠지만 이루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장호연 선배의 109승이다. 야구를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다. 최대한 끝까지 열심히 해서 두산 베어스 최다승 목표를 위해 달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한 번 준비해보겠다”고 했다.
유희관에게 끝으로 느림의 미학이란 별명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나는 좋다. 날 대변할 수 있는 수식어다”라며 “강한 공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 세계에서 느린 공으로 살아남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나보다 더 뛰어난 선배도 있었지만 공이 느린 투수들에게 조금이나마 롤모델이 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backligh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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