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진단 드림팀', 남은 백혈병세포 0.01%까지 찾아낸다

에디터 입력 2021. 9. 19. 17:31 수정 2021. 9. 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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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의 유전자이야기] ⑥소아혈액암,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는 무엇을 할까?

1995년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 11층 소아혈액병동에서 한 달 동안 수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인턴은 아침에 병동 채혈을 하게 돼 있었는데, 새벽잠이 깨지 않은 아이들을 깨워 가느다란 팔에서 조심조심 채혈을 하며 미안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전에는 진단검사의학과에 가서 아침에 채혈한 혈액 검사 결과를 적어왔는데, 환자의 어머니들이 그 결과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내가 병동에 도착하면 모두 모여 각자의 아이들 결과를 수첩에 베끼시던 모습도 생생하다.

늦은 시간 병동에서 다음 날 시행할 검사를 처방전에 표기(그 때만해도 병원 내의 모든 일이 종이 처방전을 통해 이루어졌다)하고 있을 때엔 앞에서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같이 놀기도 하고 나에게 "지금 뭐 하세요?" 같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귀여운 방해 겸 위안을 주었다. 그때의 경험은 나를 진단검사의학과로 이끌었고, 지금 나는 '유전진단 드림팀'의 일원이 돼 소아백혈병의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백혈병 진단의 시작은 골수검사이다. 채취한 골수 검체를 슬라이드에 발라서(塗抹) 염색하고 그날 오후 4시경(보통은 골수검사가 많기 때문에 좀 더 늦어진다)에 판독을 시작한다. 매번 슬라이드를 현미경에 올려놓을 때마다 어떤 병일까 긴장하고, 가능한 많은 세포를 관찰해 확신이 들 때 옆에서 조용히 수첩 또는 패드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소아혈액종양 주치의에게 진단명을 알려준다.

골수 검체의 일부는 '유세포 분석 파트'로 보내져서 급성골수성백혈병인지 B세포 또는 T세포에서 유래한 림프모구백혈병인지 감별할 수 있는 정보를 분석하는데 사용된다.

유전진단검사센터에 의뢰된 검체는 염색체 분석, 형광제자리부합검사, 융합유전자 분석, 약물유전자분석, 돌연변이 검출을 위한 차세대염기서열분석과 같은 각각의 목적에 맞춰 도착 직후부터 골수 세포 배양, RNA 추출, DNA 추출과 같은 적절한 처리가 시작된다. 각 검사는 분석에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 짧게는 하루나 이틀, 길게는 2~3주에 걸쳐 결과가 보고된다.

모든 결과가 나온 뒤 이를 종합하여 골수검사 판독을 한 번 더 하게 되는데, 이때는 유전정보가 포함된 최종 진단명을 포함해 환자의 예후를 예측하고 치료방향을 정하는데 필요한 유전자 변이 정보와 약물대사능을 알려주는 유전형과 같은 정보를 함께 제공하여 '개인최적맞춤치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하여 소아 림프모구백혈병의 전체생존율은 80% 이상으로 향상됐고 표준 위험군에 속하는 환자의 90%는 완치된다.

그 동안 '유전진단 드림팀'은 치료가 잘 안되거나 재발하는 환자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다. 기존에는 백혈병 치료 후 골수검사에서 현미경 관찰, 염색체 분석, 형광제자리부합검사나 융합유전자 분석 등의 방법으로 치료 후 남아있는 백혈병 세포의 존재를 판단했다. 그러나 기존의 검사법으로 형태만 봤을 때 정상과 구별되지 않는 백혈병 세포들, 또 아주 미량으로 남아 있다가 이후 슬그머니 늘어나서 재발의 원인이 되는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을 알아내기가 무척 어려워 항상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었다. 치료 후 반응 평가에서 이러한 세포들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방향을 정하면 생존율을 더욱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분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최근 차세대분석법들이 도입되면서 미세잔존질환의 정밀한 측정이 가능해졌다.

연구 결과,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으로 면역글로불린 또는 T세포수용체의 유전자재배열을 분석하면 진단 시 백혈병세포의 유전자 클론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치료 뒤 이 유전자 클론을 추적해 남아있는 백혈병세포를 0.01% 이하의 수준까지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검사법은 신의료기술을 통과하여 이제 치료 후 필수 검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유전진단 드림팀'의 업무는 더 늘어나게 되었지만 그간 남겨두었던 숙제 중 하나를 마친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이 결과를 기반으로 소아 혈액암의 생존율을 1% 아니 0.01%라도 향상시킬 수 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에디터 코메디닷컴 (kormedimd@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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