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女 살해' 전직교사, 교도소서 극단선택.. "억울하다" 유서

김정엽 기자 입력 2021. 9. 19. 15:01 수정 2021. 9. 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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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직장 동료였던 3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A(69)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직 교사였던 A씨는 지난 13일 오전 1시쯤 전주교도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억울하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지난달 24일 체포된 A씨는 숨지기 전까지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검찰에 송치되는 과정에서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럼 누가 죽인 건가”라고 묻자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경찰 조사에선 묵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사실 관계를 더 조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A씨가 숨졌기 때문에 범행 동기 등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던 A씨에게 지난 한 달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알고 지내던 30대 여성을 살해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A(69)씨가 지난 2일 오후 전북 완주경찰서에서 전주지검으로 이송되고 있다./연합뉴스

◇걸어 들어갔던 숙박업소, 나올 땐 침낭 속에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5일 오후 8시쯤 전남 무안군의 한 숙박업소에 지인 B(여·39)씨와 함께 들어갔다. 당시 B씨는 별다른 저항 없이 A씨와 객실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약 10분 뒤 A씨는 숙박업소 주차장으로 내려와 자신의 차량에서 침낭을 가지고 다시 객실로 갔다. 20분쯤 뒤 A씨는 침낭에 B씨를 넣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량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이어 A씨는 1시간 20분 동안 객실과 차량을 수차례 오가다 숙박업소를 떠났다.

A씨는 전남 영암호 쪽으로 차를 몰았다. 1시간30분 정도 시신을 유기할 장소를 찾았고, 숙박업소에서 30㎞쯤 떨어진 영암호 주변에 B씨의 시신을 유기했다. 차로 2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A씨는 시신을 유기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객실에서 B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숙박업소에서 살해 흔적 등을 지우기 위해 여러 차례 차량과 객실을 오간 것”이라며 “범행에 사용한 침낭은 A씨가 평소 낚시하러 다니면서 사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B씨의 휴대전화도 사라졌다. 범행 이틀 뒤 숙박업소와 시신이 발견된 영암호 사이에서 B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끊겼다. 경찰은 A씨가 시신을 유기하는 과정에서 휴대전화를 버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전남 영암 일대에서 경찰관들이 실종된 30대 여성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무안의 한 숙박업소에서 이 여성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지난달 24일 A씨를 긴급 체포했다./연합뉴스

◇범행 뒤 태연하게 일상생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건 B씨가 살해당한 지 이틀 만이었다. 가족이 지난달 17일 “B씨가 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하면서다. 추적에 나선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방범카메라(CCTV) 분석 등을 통해 A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전남 담양군 A씨 주거지 인근에서 잠복하다 그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체포 전까지 지인들을 만나고, 주거지 등에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했다고 한다.

경찰에 붙잡힌 A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까지 투입해 조사를 진행했지만, A씨는 시신 유기 장소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수색은 길어졌다. 경찰은 수색견 6마리와 기동대, 특공대, 수중 수색 요원 등을 투입했지만 B씨 옷가지 등 유류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드론까지 띄워 수색에 나선 경찰은 지난 1일 오후 2시5분쯤 해남군 영암호 해암교 상류 3~4㎞ 지점에서 수풀에 걸려 있는 B씨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발견된 곳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서, 시신이 하류로 떠내려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전남 영암 일대에서 경찰관이 실종된 30대 여성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경찰은 무안의 한 숙박업소에서 이 여성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지난달 24일 A씨를 긴급 체포했다./연합뉴스

◇사라진 현금 2억원, 돈 때문에 살해했나

수년 전 교직에서 은퇴한 A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개인 투자 등을 하며 생활했다고 한다. 15년 전 직장 동료였던 B씨와는 올해 초 다시 연락해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때부터 B씨에게 투자를 제안하고 수차례 현금을 요구했다. B씨는 지난 7월 29일엔 현금 2억2000만원을 가지고 A씨를 만났다.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받은 전세금이었다. 남편에게는 “전남 지역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말한 뒤 현금을 찾았다. B씨 남편은 경찰 조사에서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고, 확실하다고 해 더는 묻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A씨가 현금 2억2000만원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현재 A씨가 숨져 이 돈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A씨는 범행을 저지르고 이틀 뒤 B씨 남편에게 편지 3통을 보냈다. 편지엔 ‘헤어지자’ 등 내용이 담겨 있었고, 작성은 B씨가 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편지를 보낼 당시 주변을 지나던 시민에게 “다리가 불편하다. 편지를 대신 우체통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 강요에 못 이겨 B씨가 편지를 작성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지만, A씨의 죽음으로 끝내 밝히지 못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교직 생활을 했던 A씨가 평생 이룬 사회적 지위 때문에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강력 범죄를 저질러 구속될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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