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등대처럼, 할 수 있단 희망 보여주고 싶어"
“장애가 있고 은퇴할 나이지만, 할 수 있단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등대처럼.”
울산 남구에 사는 수필가 이지원(62)씨는 2주일에 한 번은 전국 각지의 등대를 찾아나선다. 이씨는 지난달 5일 최근 3년간 전국 각지의 등대를 여행하고 쓴 기록을 모아 기행집 ‘이지원의 등대기행’을 펴냈다. 인천 소청도 등대와 제주 마라도 등대, 경북 독도 등대, 강원 속초 등대 등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전국의 유인, 무인 등대 22곳과 제주의 옛 등대인 ‘도대불’ 12곳을 소개한 책이다.
이씨는 시야가 좁아지다 결국 시력을 잃게 되는 난치성 망막증을 앓고 있다. 현재 보이는 시야 폭은 약 10도. 보통 사람들이 160도인 것에 비하면 매우 좁다.
지난 10일 만난 이씨는 “몇 시간씩 꼬박 배를 타고 전국의 섬 등대를 찾는 것은 지금이 아니면 못 볼 것 같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영 소매물도 등대 같은 곳은 경관이 정말 아름다운데, 시력이 나빠지면서 지금 못 보면 평생 못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남편과 딸, 조카의 도움을 받지만 배를 타고, 섬 고지대에 있는 등대를 찾아 걷다 보면 어딘가에 부딪혀 다치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등대가 좋았다고 한다.
이씨는 “인천 팔미도 등대처럼 100년 넘게 육지의 끝에서 불을 밝혀 온 등대는 큰 위로가 됐다”며 “꼭 어딘가의 중심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장애가 있고 은퇴할 나이지만,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지금껏 찾아다닌 등대 50여 곳 가운데 가장 찾기 어려웠던 곳으로 인천 소청도 등대와 독도 등대를 꼽았다. 그는 “소청도 등대는 출발 전날 배가 결항한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한 달 후 찾았을 때도 안개가 짙게 끼어서 오전에 6시간을 기다려 겨우 배를 탔다”고 했다. 배를 타고 소청도까지 가는데는 3시간 30분이 더 걸렸다.
독도 등대는 일반 방문은 30분만 계류장에만 머물 수 있고 등대까지 갈 수가 없다. 이씨는 궁리 끝에 부산지방해양수산청의 ‘영토사랑 독도 탐방 행사’에 참가해 575t급 ‘한빛호’를 타고 독도 등대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한빛호는 항로표지(등대시설) 측정선으로, 당시 한 달간 동해안 등대 시설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씨는 “승선원들과 함께 강원 묵호항에서 출발해 2박 3일을 배에서 꼬박 보내고 독도 등대를 만났다”며 “지난 3년간 평생 먹을 멀미약을 다 먹은 것 같다”며 웃었다.
이씨는 “아직 가보고 싶은 등대가 많다”고 했다. 울산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전국의 섬에 있는 유인 등대는 34곳, 무인 등대는 303곳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방파제 등대는 1021곳이나 된다. 이씨는 “3년 전만 해도 36곳이던 유인 등대가 34기로 줄었다”며 “더 많은 등대를 찾아 사라져가는 등대 역사를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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