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제주 관문은 우리가 지킨다" 퇴직 간호사 어벤져스 이야기
근무자 대부분 돌아온 퇴직 간호사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태풍이 다가와도, 추석 연휴가 시작해도 제주에는 밤낮없이 불 켜진 곳이 있다. 바로 제주국제공항 주차장에 마련된 워킹스루 선별진료소다. 단 한 대라도 비행기가 뜨는 날이면 언제나 이곳은 퇴직 간호사들이 지키고 있다.
지난해 3월30일 이곳이 문을 열 때부터 함께 한 오성자씨(59) 역시 보건진료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퇴직 간호사다.
지난 2019년 서귀포 성산읍수산리보건소 소장을 지내다 명예퇴직을 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에 대한 걱정도, 본인의 꿈도 모두 뒤로 미루고 한걸음에 선별진료소에 돌아온 이유는 단 하나. ‘소명의식’ 때문이었다.
오성자씨는 “퇴직 후 꿈도 있어 배우고 싶었던 일을 배우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며 2년 전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제주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제주 하늘길이 뚫리지 않도록 입도객과 발열 감지자 등을 대상으로 공항에도 선별진료소가 마련된다는 소식에 근무를 자처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간호사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간호사로 지내며 가지게 된 소명의식이 있었다. 그저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랬을 거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또 “이곳에 계신 근무자들은 대부분 퇴직 간호사”라며 “제주 관문을 지키는 ‘공항 어벤져스’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을 하고 마무리하신 분들인데 퇴직하고도 기꺼이 와서 일을 하고 있다”고 동료들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표했다.
제주공항 선별진료소에서는 단 9명이 2교대를 한다. 많게는 하루 700여 명을 검사하는 날도 있지만 어느누구도 볼멘소리를 하지 않는다. 10초에 한 번씩 한 명의 검사가 끝날 때마다 비닐장갑을 벗어 갈아끼고 주변을 소독제로 닦는 와중에도 다음 검사자가 오면 미소로 맞이한다. 손과 관절에 무리가 가기도 하지만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서로를 다독인다.
오씨는 “팀웍이 굉장히 좋다. 모두 연륜이 있어 일하는 노하우도 있고 검사받는 분들에게 한 마디라도 친절하게 말을 하려고 한다. 연세가 있을수록 더 철저히 준비하고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쁘지만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마다 다 함께 접시돌리기 운동을 하면서 손목을 풀기도 한다. 우리가 건강해야 이 일을 할 수 있다”면서 웃었다.
오씨는 일을 하면서 방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곳에서 2차 감염이 발생하면 안 되니 방역만큼은 철저히 신경 쓴다. 방호복 입는 순서부터 벗는 순서까지 있을 정도다. 지원도 점점 진화해서 방호복도, 풋커버도, 시설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런 점이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도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을 상쇄시켜 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선별진료소 검사 역시 대민업무”라며 “한 명이라도 불안해하면 검사하기 전 주변 소독을 또 한다. 그들을 만족시키고 걱정을 없애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곳에 있으면서 가장 마음 아픈 일은 어린 아이들을 볼 때다. 특히 한 번이라도 검사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울기도 한다. 다독이면서 검사를 하지만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걱정이 된다.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은 검사 기술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오씨에게도 힘든 점은 있다.
제주 동쪽 끝 성산포에 집이 있다보니 한 시간 반 이상 운전을 해 출퇴근을 해야 한다. 특히 해외입국자가 많이 타는 마지막 항공편까지 기다리다 보면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하는 일은 다반사다. 지난 겨울엔 새벽시간 출퇴근을 하다 빙판길에 두 번이나 사고가 났다.
그는 “겨울엔 추위를 많이 타기도 하는데 새벽에 출퇴근을 하다보면 ‘내가 너무 무리한 일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언제까지 하게 될지 모르지만 최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오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세월이 지나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나는 최전선에서 하루하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얘기할 수 있으니 영광이다”라며 “그런 생각을 하면 더 힘을 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제대하게 되면, 모두가 일상으로 행복하게 돌아가면 그때 저도 못다한 꿈을 마저 펼칠 것이다. 그러면 되니까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소 지었다.
gw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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