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면 다 떠나는데..'지역인재 40%' 의대생 뽑으면 뭐하나

한민선 기자, 유승목 기자 입력 2021. 9. 19. 08:00 수정 2021. 9. 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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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지역인재 제도의 명암 (下)

[편집자주]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지역인재' 개념을 도입해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채용에 활용해왔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역 출신을 우대하고, 서울 청년들을 지방에 내려보내는 선순환을 기대한 것이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방대를 그나마 버티는 힘이 지역인재 제도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공공기관 채용 및 공무원 시험 과정에서 역차별 논란 등도 여전하다. 지역인재 제도의 현황과 한계를 짚어본다.

"의대 목표로 광주에서 (서울) 대치 입성했는데 지역인재로 40% 뽑는다고 하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지방의대의 지역인재 요건이 강화되면서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고민 글이 올라왔다. 과거에는 의대를 희망하는 지방 학생들이 서울로 유학을 떠났지만, 앞으로는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그 지역의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대는 자체적으로도 '지역인재'를 모시기 위해 총력전을 다하고 있다. 특히 부산대 의예과·약대의 경우 2023학년도부터 지역인재 비중을 8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의무 비율인 40%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지방 의·약대 지역인재 40% 할당…'지역인재 육성 총력전'

17일 교육계에 따르면, 2023학년도부터 지방대학의 의·치·한의대학과 약학대학은 해당 지역 고교 졸업생을 의무적으로 40% 이상 뽑아야 한다. 다만 학생 선발이 쉽지 않은 강원·제주는 최소 입학비율을 20%로 규정했다.

앞서 지난 14일 이같은 내용의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에 따라 지방대 간호대학 의무비율은 30%(강원·제주 15%)로 확정됐다.

지방대학 의·약·간호계열의 지역인재 선발제도는 지금까지 권고 사항으로 실시됐다. 이에 따라 이미 의·약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은 평균 40%가 넘고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선발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다. 2020학년도 기준 지역인재 선발 현황을 보면 의학계열은 40.7%, 약학계열은 43.5%이다. 2019~2021학년도에 30% 수준의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유지했던 부산대도 2022학년도부터 64%까지 늘리기로 했다.

교육부는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고 선발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지역인재 선발비율을 의무 사항으로 바꿨다. 지역별·대학별 편차를 감안해 '의무할당제'를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의학계열의 경우 호남권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50%에 달하지만, 수도권에서 가까운 강원권(10.8%), 충청권(35.9%)은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역인재 자격 요건도 강화됐다. 지금까지는 해당 지역의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해당 지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입학부터 졸업까지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역인재 요건은 중학교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대학을 가는 2028학년도부터 적용한다.

◆대학 졸업 이후 떠난다…'지역인재 선발' 한계는?

문제는 지역인재를 대학기간 동안 지역에 붙잡아둬도 지역의대 졸업생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방 의대에서 교육을 마친 의사들이 양질의 일자리가 있는 수도권으로 이동해 지역 의료 공백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보면 서울 3.1명인 데 비해 경북은 그 절반 수준인 1.4명에 불과했다. 구·군별로 보면 서울 종로구는 16.27명이지만 경북 영양군은 0.72명으로 22배 격차가 난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역에서 계속 살아왔던 학생들이 지역 의대 입학해서 정주할 가능성이 수도권에서 온 학생들보다는 높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지역인재 선발비율을 높였다"며 "복지부와 협의해 별도의 지역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지방권 소재 의약학계열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역별로 학령인구 수가 적은 지역일수록 우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덜 지원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 그 대학의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2022학년도 수시모집 지원 결과 서울권과 수도권 의대 평균 경쟁률이 각각 45.9대 1, 138.4대 1에 달한 반면, 지방권 의대 평균 경쟁률은 24.6대 1을 기록했다. 전국 39개 의대 평균 경쟁률 하위 10위권에는 최상위권 대학인 서울 연세대와 서울대를 제외하면 모두 지방권 의대가 포함됐다. 이 같은 격차가 의무 할당제로 인해 더 커질 수 있는 셈이다.

50세가 불혹 맞냐고? 지역인재 9급 시험 난이도에 허탈한 공시생들
고졸 9급 인재채용, 균형발전 취지와 달리 역차별 논란 평이한 문제, 낮은 경쟁률에 일반 공시생 '허탈'
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제(왼쪽)와 지역인재 9급 필기시험 국어 과목 1~3번 문항 비교. /사진=사이버국가고시센터

(다음 중) 해당 나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은?
①20세-약관(弱冠) ②50세-불혹(不惑)
③60세-육순(六旬) ④70세-고희(古稀)

지난해 이맘때 치러진 '2020년도 지역인재 9급 수습직원 선발 필기시험' 국어 과목에서 나온 문제 중 하나다. 정답은 2번. 1020 세대가 부모세대와 달리 한자에 익숙하진 않아도, 나이별 이칭(異稱·달리 부르는 명칭) 중 불혹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해당 시험문제가 공유되자 허탈감을 느꼈다고 토로한 공시생이 적지 않았다. 국가·지방직 일반공무원 시험과 비교해 훨씬 쉬운데, 결국 같은 9급으로 일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경쟁률도 훨씬 낮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 중인 지역인재 채용제도를 두고 MZ(밀레니얼+제트)세대가 역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지역인재 제도가 국가균형발전에 도움이 되긴 커녕 공무원 채용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지역갈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년 늘어나는 정원, 줄어드는 경쟁률

1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인사혁신처는 2012년부터 특정 고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9급 '지역인재 추천채용제'를 운영 중이다. △공직의 지역 대표성 제고 △국가균형 발전 △고졸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도입했지만,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며 공직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 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인 MZ세대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낳고 있다.

바늘구멍에 통과하는 만큼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 통념과 달리 경쟁률이 낮단 점에서다. 인사처에 따르면 연도별 지역인재 선발인원은 매년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인재 9급은 △2016년 159명 △2017년 170명 △2018년 180명 △2019년 210명 △2020년 244명을 뽑았다. 지난 11일 필기시험을 치른 올해는 320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선발한다.

반면 경쟁률은 매년 줄어든다. 매년 정원은 늘어나지만 채용 대상이 학교장 추천을 받은 특성화·마이스터고 졸업자만 응시할 수 있어 수요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6년 6.5대 1을 기록했던 경쟁률은 지난해 4.4대 1로 낮아졌고, 올해는 1109명이 지원해 3.5대 1로 하락했다. 올해 9급 국가직 공채시험 경쟁률이 35대 1을 기록했던 것과 차이가 크다.

또 다른 논란의 지점은 형평성이다. 채용 전형은 달라도 동일한 9급으로 입사하는데 지역인재 추천의 필기시험 난이도는 평이한 수준이다. 국가직 9급이 필수·선택과목 등 5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데 반해 지역인채 추천은 국어, 한국사, 영어 3과목만 응시하면 된다. 해당 과목들도 지엽적인 문제가 많은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쉽지 않은 일반 9급에 비해 수월한 편이다.

공시생들은 물론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특히 최근 들어 사회 화두로 '공정'이 떠오르며 경쟁을 뚫고 들어온 공무원들이나 일반 직장인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동일한 일을 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기회의 공정을 빼앗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공부 안하는 게 더 이득일 정도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박탈감이 커지면서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뒤 공기업에 취업한 윤모씨(30)는 "이럴거면 굳이 수능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온 뒤 치열한 경쟁률을 뚫을 필요 없이 처음부터 특성화고에 가면 되는 게 아니냐"며 "기울어진 경쟁이나 마찬가지인데 스무살에 입직하면 호봉에서도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처 측은 "사회 인적구성이 점차 다양해지고 MZ세대 등장 등 기존 가치관광 생활방식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며 "다양한 요구가 반영되고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를 넘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균형인사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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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선 기자 sunnyday@mt.co.kr, 유승목 기자 mo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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